*2009년 최고의 영화 Best 10*

1. 박쥐

<박쥐>에 대해서는 별로 쓸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 대해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으니 말입니다. 다만 이 영화가 언젠가는 꼭 한 번 재평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비난과 비판을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평가들이 너무 갑자기 이 영화를 떠밀어내 버린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박쥐>를 굉장히 호의적으로 본 저로서는 영화에 관련된 갖가지 논란들조차 영화가 가진 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2. 호우시절

적어도,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물리력은 단 하나의 방향, 즉 앞으로만 나아갈뿐입니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의 물리력, 그러한 힘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다름 아닌 그것이 우리들 살아감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동화(정우성)와 메이(고원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언젠가 서로를 사랑했던 시간들을 뒤에 두고 왔습니다. 삶은 계속됩니다. 동화와 메이, 그들 각자의 시간도 각각의 방향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뒤에 두고 온 것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게 전진하던 그들의 시간이 하나의 공간에서 문득 부딪힙니다. 두 사람의 시간은 잠시나마 서로를 사랑했던 때로 멈춥니다. 두 사람은 행복할까요? <호우시절>은 인생의 어느 특정한 시점에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놓고 온 이들을 - 그러니까, 우리 모두를 - 나즈막이 위로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올렸던  글쓴이 본인의 어떤 특정한 기억의 존재를, 그 기억의 존재가 결국 <호우시절>을 올해 최고의 영화중의 하나로 만들었음을, 애써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모두가 그러하듯, 저 역시 살아오고 살아가며 종종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뒤에 놓고 왔습니다. 후회합니다. 이 후회가 앞으로 덜 할것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 계속 후회하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살아있음을 가장 생생히 일깨워주는 것은 바로 그 통증들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후회하는, 그 통증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호우시절>은 그 우리들 모두의 비극을, 숙명을 조용하게 위로합니다. 자주, 인물들의 대화에 섞여들던 빗소리가 떠오릅니다. 검은 암실에서 저는 많이 슬펐고 또 많이 행복했습니다.



3. 마더

봉준호 감독은 전작들에서 적절하게 유머 코드를 섞는데도 큰 재능을 보여줬는데, <마더>에서는 그런 장면들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 없다는 건 아닙니다만,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미에서 - <마더>라는 영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전작들에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감정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분산시킵니다. 그런데 <마더>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그런 분산이 적습니다. 하나의 감정이 끝까지 팽팽하게 당겨져 있습니다.  분명 <마더>는 어떤 분이 말씀하셨다시피 한국 영화가 가 닿을 수 있는 어떤 정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하는 이야기는 커다란 미스터리를 축으로 - 문아정을 누가 죽였는가? - 혜자의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도, 또 옳고 그름의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도 없는 모성과 결핍된 여성성이 단단하게 얽어들어가면서 밀도 있는 드라마를 구축하고, 또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갖가지 위기 상황들이 긴장의 끈을 시종 팽팽하게 당김으로써 <마더>는 괴물 같은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말해야 사족에 불과한 말이지만, 혜자를 연기한 김혜자 선생님의 신들린 연기는 거의 경외로울 정도였습니다. 반전도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대중적으로, 또 이토록 미학적으로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이름 석자가 이제 그 어떤 의심도 불허하겠다는 듯 완고하게 국내 영화 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4.  바더 마인호프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밖에 존재합니다. 애초에 우리들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은 별로 위협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의해서 내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쉽게 믿으려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고 존재 양식을 바꿉니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는 우리의 밖에 있으면서 우리를 규정해온 것들, 즉 이데올로기의 시대였습니다. 다수의 구체제가 체제의 전복을 통해, 전복되지 않은 구체제는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통해, 살아남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이데올로기들이 저마다의 슬로건을 내걸고 격돌하기 시작합니다. <바더 마인호프>는 1967년 독일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1967년은 프랑스에서의 68혁명을 목전에 두고, 케네디가 암살되었으며, 체 게바라의 신화가 볼리비아에서 중지되고,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했으며, 베트남 전의 발발과 그에 대한 반전 시위가 격렬해지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독일에서는 그 때, 마인호프와 바더,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한 RAF, 즉 적군파로 알려진 집단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바더 마인호프>는 그렇게 이데올로기의 전장 한 가운데에서 가장 격렬했던 혁명 그룹의 시작과 끝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더 마인호프>에서 RAF가 벌이는 '혁명적 행위' 들은 살벌하기 그지 없습니다. 요인 암살, 여객기 납치, 폭탄 테러... 영화가 "RAF는 1998년에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라는 말로 끝맺을 즈음, 어딘가가 서늘해져 오는 것은 여전히 그것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을 테러는 새로운 형태의 국지전이 분명하고, 체제를 전복하려는 자들과 체제를 수호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바더 마인호프>는 그래서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이데올로기의 탄생과 종말을 있는 힘껏 끝까지 몰아가는 영화의 뜨거운 온도는 압도적입니다. 



5. 스타트렉 : 더비기닝

솔직히 놀랐습니다. J.J.에이브람스는 장사 속이 훤한 사기꾼, 비슷한 인간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은 올해 여름에 개봉한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북미를 제외한 여타 국가들에서 생각보다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은 미스터리입니다.)  물량으로 보나, 퀄리티로 보나, 이야기의 탄탄함으로 보나, 오랜 전통의 시리즈를 새롭게 리부트 하려는 야심으로 보나, 모든 것이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준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은 올해 가장 행복했던 극장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극장에서 세번 봤습니다.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들 중에 하나는, 단연 우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였습니다. 세상에, 저는 왜 여태 우주 공간 속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걸까요. 파괴된 우주선 밖으로 날아가 버리는 선원을 따라가면서의 그 막막한 침묵과, 아찔한 우주 다이빙 씬에서의 그 고요함 사이사이를 파고 들던 주인공들의 숨소리에,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었습니다. 경이로운 스페이스 오페라의 탄생이었습니다. 아 이 영화를 IMAX 에서 DMR로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요즘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 보기 힘든 유쾌한 낙관주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6. 파주

<파주>의 서사는 비선형적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시작된 영화는, 과거로 수시로 플래시백 됩니다. 저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 <파주>의 서사가 일견 비슷한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박하사탕>이 플래시백 하는 지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의 맥락과 맞닿아 있고 또 그 사이사이에 기차가 역행하는 신이 반복적으로 삽입된다는 점에서, <파주>보다는 다소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분명 <파주>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영화 전반에 피어오르는 그 모호한 안개의 존재는 심리적으로 꽤 압박을 줍니다. 이야기와 인물이 갇혀있다는 느낌이랄까요, <파주>의 안개는 패소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묘합니다. (게다가 제가 영화를 보고 나온 새벽엔 서울에 참으로 드문 안개가 낮게 깔려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의 것들, 이야기의 난해함과 안개가 주는 모호함을 연출자의 의도로 받아들인다면, <파주>는 아주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안개를 뚫고 파주로 들어오는 첫 신과, 마찬가지로 안개를 뚫고 파주를 벗어나는 마지막 신의 조응은,  <파주>의 압권입니다. <파주>를 생각하니, 문득 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가 생각이 납니다. 첫 소절을 옮겨봅니다.  "슬프다/내가 사랑한 자리마다/모두 폐허다."



7. 업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습니다.  이 영화는 고등학교 윤리 시간 교과서로 써도 될만큼 정치적으로 - 좌와 우의 개념이 아닌 의미에서의 '정치적' - 매우 올바릅니다.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버리고 나서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곳에, 다만 삶이 놓여져 있더라는. 필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무성 영화처럼 덤덤하게 흘러가는 초반의 오분이 압권이었습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닿지 못할 꿈을 꾸다 먼저 떠나버린 소녀, 홀로 남은 풍선장수. 우리 모두의 모습.



8.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2009년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간 극장 안에서 그토록 많은 것을 담고 돌아오는 길은 뿌듯했습니다. <나의판타스틱데뷔작>은 어쩌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찬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두 꼬맹이들의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히게 될 줄은 저로선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또한 두 소년의 성장담이기도 합니다.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의 집에서 벗어나고픈 불안해 보이는 소년과, 주변의 사랑과 관심이 부족해 언제나 자신을 귀찮아 하는 형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다른 한 소년 둘이 영화를 찍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는 모습은 언젠가 세상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절망했던 우리들의 지난 날을 떠올리게 합니다. 코 끝이 찡해오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가진 힘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영화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위대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습니다.



9.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
 
이력서든 뭐든, 취미 특기 란에 언제나 '영화감상' 이라고 쓰고도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본 이라면 "영화 감상" 이라는 취미의 그 외로움을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영화가 대관절 무엇이기에, 우리를 이처럼 웃기고 울리고 살아감을 풍성하게 만드는 걸까요.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는 영화의 힘을 영화의 안과 밖에서 두루 천명하는 영화입니다. 영화광의 연출은 정점이라 해도 무방하고, 그가 영화속에서 영화를 다루는 모습엔 어떤 진지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는 감동적이기 까지 합니다. 음악이 계속해서 머리속을 휘저어놓던, 그야말로 찢어발겨지던 히틀러의 면상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10. 드래그 미 투 헬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3년간 여러분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호러' 영화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해보면 왜 <드래그미투헬>이 탁월한 영화인지 알 수 있습니다.





*최악의 영화*
<요가학원> 을 꼽겠습니다. 좋은 영화들은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들을 굳이 많은 이들과 나누어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기에 올해 개인적으로 가장 최악이었던 영화 하나만을 꼽아봤습니다. 익무 가족들의 좋은 영화들이 많아 아마도 행복할, 2010년을 바라고 또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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