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9
  • 쓰기
  • 검색

[영화리뷰] <바튼 아카데미(2023)> : 그래,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바비그린
1823 6 9

 

모든 이미지 출처: 영화 <바튼 아카데미>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운 맛의 시대죠. 떡볶이도 매운 맛, 마라탕도 매운 맛, 심지어 요새는 김치도 더 맵게 팔더라구요;; 아 물론 세상살이도 매운 맛입니다.

언젠가부터 대중매체 역시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한때 지나치게 자극적인 플롯을 비판할 때 쓰던 말인 '막장드라마'는 어느새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되어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개연성이 모자라거나 아예 뇌절해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막드가 샘솟게 하는 미친듯한 도파민에 우리는 이제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더 이상 어지간한 막드는 막드라고 부르기도 뭐해 졌습니다.

고백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심심담백한 영화입니다. 졸리시다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났을 때 속 편한 건강식을 먹은 것마냥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생량한"? 아우 촌스러워. 그래, 클래식하다고 하지 뭐.

아직도 제게 생생하게 남아있는 곽재용 감독의 명작, <클래식>에서 손예진 배우가 한 대사입니다. 극중 자신에게 온 러브레터에 "생량한"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위의 대사를 하는데요. 읽으면서 보니 아주 촌스럽기 짝이 없는 편지지만, 클래식하다고 퉁쳐줄만큼 은근한 호감이 생겼던 거죠. 오늘의 영화 <바튼 아카데미>도 마찬가집니다. 촌스럽다는 말보다 "클래식"하다고 해주고 싶어요.

영화는 아예 오프닝의 배급사 로고(유니버설)부터 "나는 클래식하다"를 공표하고 시작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70년대. 크리스마스 휴일의 기숙학교에 가족 없이 남겨진 교사, 조리사, 학생, 그리고 일꾼의 이야기입니다.

설마 주인공들이 투닥투닥하다가 서로 유사가족이 되는 건 아니겠죠? 서로 인종도 생김새도 성격도 다르지만 갈등 끝에 공통점을 발견하고 정이 드는 거 아니잖아요? 설마 마지막에 그렇게 싫어하던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건 아니겠죠?????? 네??????? 그렇게 뻔하다구요??????? 감독님!!!!!!!!!!!!!!!!

<바튼 아카데미>는 클리셰 덩어리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플롯, 어디서 본 것 같은 캐릭터 구성, 어디서 본 것 같은 갈등, 어디서 본 것 같은 과거사. 이런... 토마토 지수가 썩다 못해 터지겠는데요????? 아마 그렇겠죠????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튼 아카데미>의 감상 포인트는 어떻게 이 틀에박힌 이야기를 차별화했느냐가 되겠는데요. 의외로 아주 심플했습니다.

그냥 잘 만들었습니다.

거의 파묘당한 오니 저리가라 하는 수준으로 '폴 선생'이 빙의한 것 같은 찰떡 연기를 보여주는 주연 폴 지아마티를 비롯해 각자의 몫을 모두 깔끔하게 해내는 배우들.

결코 휘황찬란하지 않지만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 미술과 세트.

목표한 바를 오롯이 향해가는 성실한 플롯과 무엇보다 훌륭한 타율의 코미디.

<바튼 아카데미>는 좋은 재료를 듬뿍 넣고 끌인 정직한 백숙이자, 질 좋은 쌀을 찧어 막 쪄낸 따끈한 가래떡이고, 깊은 산골짜기 깨끗한 수원지에서 끌어올린 시원한 생수입니다. ​​

앙트레 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

그렇게 가족이 된다.

그렇다고 <바튼 아카데미>가 그저 기존 이야기 방식만을 따르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안에서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있는데요. 바로 '앙트레 누(entre nous)'라는 프랑스어 표현입니다. '우리 사이에'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영화 맥락상으로는 '우리끼리의 비밀'내지는 '퉁치고 지나갈 것, 쌤쌤'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들 삶의 큰 문제들을 하나, 두 개. 혹은 여러 개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테구요. 그 문제들을 어떻게 감당하시나요? 어떤 문제들은 해결이 어려운, 아니 애초에 해결할 수가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버티죠. 그저 안고 갑니다. 더 좋은 일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으며, 그 에너지가 내 문제들을 이겨내지는 못하더라도 끌어가며 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도 서로 안 맞는 부분 투성이인데, 그저 학교에 휴일동안 남겨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이 쉽게 가족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각자 슬픔과 아픔을 가득 품고 있는 존재들이라면 더욱이요.

이럴 때, 어떤 문제는 그저 퉁치고, 혹은 묻고 지나감으로써 대처할 수도 있겠죠. 남몰래 앓고 있는 우울증, 슬픈 가족사, 보여주기 싫었던 나의 치부 같은 것들 말이에요. '앙트레 누'는 그저 폴 선생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아닌, 가족이 되어가는 방법, 나아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감독이 던지는 은유입니다. 우리 사이의 비밀로 하자. 우리끼리 힘을 내어 이기자. 퉁치고 지나가자. 좋은 날이 올 테니.

보스턴 여행을 마무리하는 후반부, 허넘 선생과 털리, 그리고 메리는 나름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디저트로 '체리 쥬빌레'를 시키네요. 달콤한 체리케이크에 알코올을 뿌려 불쇼를 하는 근사한 요리입니다. 하지만 체리 쥬빌레엔 알코올이 들어가고, 털리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 그걸 먹을 수 없습니다. 한참 점원과 실갱이를 하던 세 사람은 체리와 크림을 따로 주문합니다.

밖에 나와서 크림에 체리를 올리고, 위스키를 뿌린 다음 직접 불쇼를 시전하는 비범한 이들(...) 물론 망했죠. 하지만 세 사람은 웃습니다. 폭소로 디저트를 대신하죠. 근사한 정식 체리 쥬빌레 대신, 웃음과 야매 체리쥬빌레로 퉁친 웃음. 우리끼리의 이야기. 여행의 마지막 디저트는 앙트레 누 였습니다.

오늘 <바튼 아카데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북미지역에서 특히 평가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아마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미국문화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기에 더욱 그럴테지요.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익숙한 소재와 이야기라도, '잘' 만든다면 여전히 그 이야기의 본질은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보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영화, 영화관에 가서 보셔도 좋겠고, 혹은 고단한 한 주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따뜻한 담요에 우유 한 잔을 데워서 함께 보셔도 좋겠습니다.

 

 

 

 

 

 

블로그에 더 많은 리뷰가 있습니다. :)

 

https://m.blog.naver.com/bobby_is_hobbying/223366872031

 

 

바비그린
1 Lv. 510/860P

이퐁퐁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6

  • 셜록
    셜록

  • 노스탤지아
  • 해리엔젤
    해리엔젤

  • 헷01

  • 와킨조커
  • golgo
    golgo

댓글 9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앙트레누가 무슨 뜻이지? 하고 찾아보려다가 까먹고 있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22:22
24.02.27.
2등

평론가형 영화이면서 재밌는 영화
기생충 같은 영화였네요.

22:37
24.02.27.
와킨조커
맞아요, 예술성도 있는 영화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23:12
24.02.27.
3등
이런 류의 영화를 본지 상당히 오래 됐음에도
극심한 뻔함에 거부감이 몰려왔네요.
좋게보시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래도.. 좀.. 그랬네요.
01:30
24.02.28.
굉장히 단순하고 흔한 말
"You can do this~"인데...
그 장면에 그렇게 마음에 맺히는 영화였습니다
14:49
24.03.01.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림 시나리오' 시사회 당첨자입니다. 2 익무노예 익무노예 2시간 전13:59 219
공지 제4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개막식 행사에 초대합니다. 7 익무노예 익무노예 4일 전13:34 1661
HOT <가여운 것들>을 보고 3 도삐 도삐 39분 전15:57 246
HOT 제리 브룩하이머, <캐리비안의 해적> 조니 뎁 복귀에 ... 2 카란 카란 56분 전15:40 361
HOT <반지의 제왕> 신작, 골룸이 주인공이 된 배경 5 카란 카란 2시간 전14:03 848
HOT 케빈 코스트너 '호라이즌' 현재 로튼 평 5개 - 20% 2 NeoSun NeoSun 57분 전15:39 304
HOT 골든카무이 영화 잘 만들었네요!! 1 카스미팬S 1시간 전15:30 336
HOT 칸 영화제 호평 '에밀리아 페레스' 로튼토마토 리뷰 2 golgo golgo 1시간 전15:24 351
HOT TV아사히와 한국 SLL,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콘텐츠 ... 2 카란 카란 1시간 전14:55 407
HOT BBC)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 3 소설가 소설가 1시간 전14:39 590
HOT 케빈 코스트너 '호라이즌' 첫 로튼 20% 3 NeoSun NeoSun 2시간 전14:28 620
HOT CGV 주간 굿즈 실물 사진(매드맥스,하이큐,별처럼빛나는너에게)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4:07 382
HOT 윤아가 올린 칸영화제 포토슛들 4 NeoSun NeoSun 3시간 전12:47 733
HOT <창가의 토토> 실제 주인공을 알아보자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12:35 454
HOT 77회 칸 영화제 현재까지 스크린데일리 평점 4 얏호!!! 4시간 전12:14 1262
HOT 케빈 코스트너 '호라이즌' 칸 프리미어 리뷰들 호... 5 NeoSun NeoSun 5시간 전11:09 880
HOT 애냐 테일러 조이 칸 2024 포트레이트 추가 / '퓨리오... 1 NeoSun NeoSun 5시간 전10:40 591
HOT '메갈로폴리스' 칸 프리미어 기립박수 7분 기록 1 NeoSun NeoSun 6시간 전10:23 681
HOT Megalopolis ... 변사 (Narrator ??) 방식을 쓴다는 썰 4 totalrecall 6시간 전10:19 577
HOT 이토 준지 버전 <던전밥> 12 카란 카란 6시간 전10:13 1980
HOT <더 에이트 쇼> 새 포스터 공개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6시간 전09:48 1345
HOT CJENM이 올린 칸영화제 윤아 X 류승완 감독 투샷 1 NeoSun NeoSun 7시간 전08:58 2823
1137281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0분 전16:26 49
1137280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2분 전16:24 102
1137279
image
golgo golgo 16분 전16:20 68
1137278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0분 전16:16 70
1137277
image
시작 시작 36분 전16:00 209
1137276
image
도삐 도삐 39분 전15:57 246
1137275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0분 전15:56 123
1137274
normal
golgo golgo 49분 전15:47 241
1137273
image
NeoSun NeoSun 51분 전15:45 218
1137272
image
카란 카란 56분 전15:40 361
1137271
image
NeoSun NeoSun 57분 전15:39 304
1137270
image
카스미팬S 1시간 전15:30 336
1137269
image
golgo golgo 1시간 전15:24 351
1137268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5:22 205
1137267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5:19 149
1137266
image
totalrecall 1시간 전15:10 578
1137265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5:05 334
1137264
image
GI GI 1시간 전14:59 177
1137263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4:55 407
1137262
normal
시작 시작 1시간 전14:47 480
1137261
normal
소설가 소설가 1시간 전14:39 590
1137260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4:28 620
1137259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4:23 215
1137258
normal
접속영화여행 2시간 전14:23 246
1137257
image
접속영화여행 2시간 전14:22 361
1137256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4:16 298
1137255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14:15 437
113725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4:09 243
113725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4:07 382
1137252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14:03 848
1137251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시간 전14:02 227
113725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시간 전14:00 299
113724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시간 전13:59 117
1137248
normal
익무노예 익무노예 2시간 전13:59 219
1137247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3:13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