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에 쓰는 최악의 하루 -1부, 은희
최악의 하루를 봤습니다.
저에게 김종관이라는 이름은 특별해요.
저는 그를 떠올릴 때 자동으로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기억하거든요.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제 세계관에 정유미를 소개시켜준 영화이고
처음으로 영화 속 인물을 사랑하게 만든
기이한 체험을 가능케 한 멋진 단편이었죠.
단순한 순간의 포착과 별 기교 없는 화면이었지만
영화는 풋풋한 감수성을 방금 가슴을 열어 꺼낸 듯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장편이라니!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아마도 흐릿한 배역들만 처리하는 듯한 무명배우 은희가 있어요.
연기연습을 하던 중 혼쭐이 난 은희는 귀여우면 다냐는
핀잔을 들으며 거리로 나옵니다.
그 때 마침 자신의 책을 홍보하러 왔다 길을 헤매는 료헤이를 만나요.
넉넉한 시간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그녀는 그의 길안내를 자처하고
덕분에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를 대접받죠.
잠깐의 만남을 뒤로 하고 남산에 온 그녀는 나름 잘 나가는
남자친구를 만납니다. 그런데 둘의 사이가 좋지만은 않군요.
툭탁거리던 은희는 화가 난채 남산을 맴도는데
그녀가 SNS에 남긴 글귀를 보고 만나다 헤어졌던 유부남이 찾아옵니다.
은희는 각각의 남자들 앞에서 다른 은희를 연기하며
위기를 돌파해보려 하지만 점점 상황은 악화되고
점차 최악의 하루로 변해갑니다...
김종관의 관심은 여전히 연애의 순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의 세계관 속 남녀는 분명 귀여울지언정
마냥 순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속물적이고 부도덕하지도 않아요.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자 화근이며, 매력덩어리이면서
민폐의 끝을 달리는 우리의 은희는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지만
그저 순간에 충실할 뿐이라는 감독의 설득에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있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어요.
그녀의 연애사를 단락으로 보면 마치 그녀가 닿고 싶어하던
멜로드라마의 인물처럼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여성 주인공의 슬픔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어요.
자신의 역사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셈이며
감정의 온도에서 그녀는 순간 처절할지언정
텅비어 있지 않아요. 그게 또 그녀의 매력이 돼죠.
그녀가 텅 비어 있는 순간은 혼자 있을 때입니다.
하루를 통한 그녀의 여정은
귀엽기만 하고 진심 없던 독백으로 시작해
가엽지만 진심 가득한 푸념을 하는 밤으로 끝납니다.
기이한 연애담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은희의 하루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료헤이입니다.
여기부턴 에러 때문에 따로 올리겠습니다!!
엄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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