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락] 간략후기
공효진 주연의 스릴러 영화 <도어락>을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혼자 사는 주인공의 집에 누군가가 드나든 흔적이 발견되고 이후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최근 몇년 간 사회 이슈를 테마로 등장한 스릴러물들이
보여줬던 아쉬운 부분들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완하면서, '1인 가구' 세태에서 생겨 나는
사회 문제들과 장르적 연출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웰메이드 소셜 스릴러'가 되었습니다.
'혼자 사는 내집에 누군가가 나 몰래 드나든다거나 숨어 있다면?'이라는 이 영화의 설정은
사실 항간에 떠도는 '카더라' 식 괴담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극적인 설정이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비약을 가급적 지양합니다.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극적인 설정에서 출발하여 현실의 그림자를 세세하게 조망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주인공 경민(공효진)의 처지부터 지극히 평범하여, 스릴러 장르의 히로인이라고 해서
어떤 특수 능력을 과시하지 않고 눈 앞에 놓인 난관에 힘겹게 맞서나갑니다.
독립해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며 학자금 대출을 여태 갚고 있는 계약직 은행원인 경민은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도 두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내가 싫다"고 자책할 만큼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불안과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웃 간에 삭막하다'는 불평도 물색없이 들릴 만큼 두려운, 특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 두려운
사회 속에서 경민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려 하지만 그것은 때로 유난과 민폐로 치부됩니다.
심지어 경찰에게는 "사건이 벌어져야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녀의 불안은 타인에게 좀처럼 온당히 공유되지 못하는, 홀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 됩니다.
감정에 복받쳐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손님, 피해자인 자신을 원인제공자로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등
영화에서 중심 사건 못지 않게 두려운 것이 이처럼 경민을 고립시키는 타인들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이미 충분히 두려운 세상의 그림자에 범인은 비뚤어진 욕망의 둥지를 틀고,
주인공은 두려운 마음과 단련되지 않은 신체로 범인과 맞서야 하는 것이죠.
<도어락>의 스릴러적 측면은 혼자 산다는 이유로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마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주는 긴장감에만 매달리지 않고, 영화적으로도 비교적 흥미롭게 구축되었습니다.
경민의 집에 침입하는 범인의 존재를 미리 알리지 않는 영화는 경민의 일상 곳곳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게 꺼림칙한 일면을 부여하고, 그들에 대한 단서를 곳곳에 흩뿌리며 의심케 합니다.
관객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범인을 예측 가능하게 되지만, 그 예측까지 이르는 과정도
영화의 일방적인 강조보다 곳곳에서 제시된 단서들로 인한 합리적 의심에 따른 것이고요.
주인공이 범인의 정체를 쫓는 과정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보다 범인과 관련된 단서들이
날카롭게 제시된 후 그 단서들 간의 연결고리, 단서들끼리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설득력 있고요.
범인과의 전면전으로 치닫는 후반부는 장르물로서 극적인 연출이 어느 정도 가미되었지만
이 때도 두려움 속에서 분투하는 주인공의 '보통사람' 포지션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무엇보다 이 '스릴러 영화'를 보고서 관객이 즐길 뿐만 아니라 같이 긴장하며 공감하게 되는 데에는
주인공 경민을 연기한 공효진 배우가 보여주는, 장르와 리얼리티의 경계에 선 연기 덕이 큽니다.
돌파해야 할 생계와 일상에 드리운 불안 속에서 분투하는, 그렇다고 자신을 단련하거나 할 겨를 없이
두려움 앞에 속수무책인 일반인의 모습을 특유의 침착하고 담백한 연기로 소화하는 공효진 배우는
영화 속에서 '스릴러 퀸'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영화보다 긴장되는 현실에 대한 충실한 메신저가 됩니다.
경민의 직장 후배이자 절친한 동생인 효주 역의 김예원 배우도 인상적인데,
옆에서 보조만 맞추다 사라지는 감초 인물이 아니라 혼자서 위기를 돌파할 여력이 없는 경민 곁에서
끊임없이 동력을 지원하는 역할로서 든든하고 시원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또 범인인가 싶었는데 조력자 형사로 등장하는 김성오 배우의 안정된 연기와
관객으로 하여금 의심의 눈초리를 자아내게 하는 조복래, 이가섭 배우의 음침한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도어락>이 사회파 스릴러로서 가진 장점은 장르적으로 연출해야 할 부분과
사회적 메시지를 줘야 할 부분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공기를 충실히 불어넣은 배경 위에 장르적 연출을 가미하고,
그렇게 구축된 장르적 연출에 사회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실어 전달합니다.
이로써 관객은 주인공을 지켜보며 스릴러적 긴장감을 느끼다가 이내 주인공에게 주어진
사회적 포지션(1인 가구)이 낳은 현실의 불안과 두려움에 근접해 경각심을 얻게 됩니다.
혼자서 살 순 있지만, 혼자서 살아남을 순 없다는 것을 혼자가 익숙해진 사회에서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추천인 9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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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 배우 연기가 너무 했어요ㅠㅠ 너무 잘해요ㅠㅠ
공효진 배우의 연기가 영화와 정말 밀착된 듯 했습니다 ㅎㅎ
마지막 문장이 깊이 와닿네요. 혼자선 살아남을수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거 같아요.
그래야 한다면 너무 외롭고 무서울거 같습니다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외로운 세상이 되지 않으면 좋겠네요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리뷰입니다~~ 잘 읽었어요^^
저도 마지막 부분이 인상 깊네요. 그래도 익무와 익무분들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특히 마지막줄 정말 공감되네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혼자가 익숙하다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지 않을까요^^
제가 착각한 것이라면 다행인 일이겠죠.^^
좋은 후기입니다. 이렇게 쓰고 싶었는데 불가능한 글 솜씨인지라...멋지십니다.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좋은후기 감사합니다!
또 범인인가 싶었는데 형사역의 김성오 배우라니...ㅋㅋㅋ
혼자 사시는 분들은 특히나 마음에 닿는 영화가 되겠네요. 무섭게...
영화가 기대한 작품은 아니였는데 평 보니 봐야겠어요~ㅎㅎ
이번에도 역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영화 끝나고도 일상에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