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점점 더 괜찮아지는 영화 '007 : 퀀텀 오브 솔러스'
흥행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한물 간 캐릭터 취급을 받으며
(어나더 데이가 구리긴 했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가 했던 제임스 본드가 '카지노 로얄'로 화려하게 부활했을 때,
(그냥 부활도 아니고 대다수의 '이게 되겠냐?'란 의심을 깨부수며)
당연히 모든 관심은 속편으로 쏠렸었습니다.
완결성을 갖추면서도 이어가고자 하면 얼마든지 이어갈 껀덕지를 남겨두고 끝난 전작 덕분에
속편 '퀀텀 오브 솔러스'는 시작부터 제임스 본드의 복수극을 표방하고 나섰고
주인공의 순애보에 애태웠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분노에 찬 본드가 얼마나 격렬하게 적들을 밟아줄지를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결과물은...
(역시나 흥행성적과는 별개로)
영 신통치 않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전작의 치밀하고도 다채로운 구성을 가진 모습에서
어째 화려하기는 한데 허전한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제가 기대했던 '카지노 로얄의 속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실망스럽게 보고도 자꾸만 손이 가는 그런 영화가 있지 않습니까?
제게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가 바로 이 '퀀텀 오브 솔러스'였습니다.
또 그러다 보니, 이 영화가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쓸데없지만서도 굳이 안 해도 되는 변명...이라기보다는
이러이러한 점이 재미있어졌다는 감상을 몇 자 주절주절 떠들어 보려고 합니다.
(서론부터 이미 굉장히 쓸데없는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일단 이 한 편 가지고는 완결성을 갖지 못합니다.
'카지노 로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관객이 본드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을까요?
더 황당한 건, 전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봐도 주인공의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적에게 이용당하다 눈 앞에서 죽었다'
라는 대사건을 겪은 본드,
시체를 안은 채로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
배신감에 'Bitch!'라는 말을 뱉는 모습,
마지막에는 그 분노를 뿜어낼 대상을 찾아내는 것까지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이어지는 영화에서의 본드는 분노에 차서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할 것 같건만
정작 퀀텀의 본드는 너무 차갑습니다. 또 차분합니다.
그냥 이전에 흔히 봐 오던 규칙 어기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플레이보이 스파이의 모습입니다.
뭔가 이상한 거죠...
근데 전작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 영화를 이어보면 대략 제임스 본드의 행동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희한하게도 말이죠...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뭐라고 할까요?
(비참한 어휘력이여...ㅜㅜ)
퀀텀에서 본드의 심리상태는 카지노 로얄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본드, 제임스 본드'로 소개하며 씨익 웃던
딱 그 때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지만 절대로 멀쩡할 리가 없고,
보는 입장에서도 멀쩡한 척만 하지 안쪽이 망가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거 말이죠.
이런 걸 염두에 두고 '퀀텀 오브 솔러스'를 보면 제임스 본드가 냉정한 듯 하면서도
전과 다르게 여유가 없다는 것을 여러 군데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본드의 심리를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이용해 계속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일반통행만 고집해서 답답하게 느껴지고
객관적이고 차갑게 바라보는 듯하지만 멈추지 않고 극단으로 몰아치고
뭔가 계속 폭발하고 뜨거워질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오히려 황량해지죠.
그런데 이게 너무 과하다 보니까,
주인공의 입장을 상당히 깊숙히 이해한 채로
영화를 시작하지 않는 이상은
그냥 영화 자체가
단순하지만 일반통행만 고집해서 답답하게 느껴지고
객관적이고 차갑게 바라보는 듯하지만 멈추지 않고 극단으로 몰아치고
뭔가 계속 폭발하고 뜨거워질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오히려 황량해지는 거죠.
분명 액션 블럭버스터를 보고 있는데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추욱 처지고 가라앉는 기현상을 겪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액션 블럭버스터이면서도
철저히 제임스 본드의 내면을 넌지시 관객에게 동화시키는 데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악당 쪽에서도 그런 면이 드러납니다.
퀀텀은 과거 스펙터를 떠올릴 만큼 MI6의 주적이 될 것처럼 강대해 보이더니
제임스 본드가 베스퍼를 극복하는 시점에서 맥없이 퇴장해 버립니다.
(하긴 그 전에 상층부가 죄다 신상이 털렸으니 뭐...)
본드가 베스퍼를 진심으로 떠나보낸 순간에
철저히 본드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영화에서 퀀텀은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린 거죠.
본드걸도 파격적으로 제임스 본드의 상대역이라기보다는 그의 거울 같은 존재로 등장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죠.
(속편의 본드걸은 한층 더 파격적이었지만...)
근데 액션영화라는 점에 비중을 두고 본 관객들에게 이게 납득이 될 리가 없죠.
(저 또한 그랬고요...)
뭐...그러니까 결론은...
이 영화는 사실상 제임스 본드의 내면을 파고든
이를테면 인셉션하듯이 제임스 본드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봤더니 좀 달라보이더라는......
.....................와, 진짜 잡담이다......
덧. 서론 쓰고 지쳐서 정작 본론을 대충 쓴 건 비밀로......;;;;;;
덧. 이건 딴 소리인데 분명 퀀텀 오브 솔러스까지 다니엘 크레이크의 본드는 막 00를 단 신참이었는데
스카이폴에서는 갑자기 퇴물 취급을 받아서 '이건 또 뭐야?' 싶던 기억이 나네요.
이쪽은 보다 보니 '제임스 본드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거구나' 하고 이해해서 금방 적응했지만...
덧. 그냥 제 머리 속에서 007 시리즈는 배우가 바뀔 때마다 007와 제임스 본드라는 코드명을
전대가 은퇴하면서 후대가 물려받는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별 이유도 없이 그게 제일 맘 편해서...;;;;;;)
해롱해롱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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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사족'이라는 점이죠. ㅎㅎㅎㅎ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어디까지 파헤쳐 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실험작 같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 성공적인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스카이폴에서 거의 하나의 신화로 승격된 제임스 본드를 이룩하는 데에는
인간적인 면모를 미리 한껏 탐구해 본 퀀텀의 분투도 한몫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
영화 자체가 한 번 보고 완전히 잊혀진 영화였는데,
본드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공감을 찾으시면서 영화를 느끼셨군요 ^^
저는 일단 본드의 행동에 대한 납득보다 영화의 만듦새에 부족함을 느껴서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좀 더 많아진 후에 한 번 쭉 이어 보고 싶네요.
카지노 로얄, 스카이폴 블루레이로 갖고 있는데.
이 영화는 없어요.
한때 살까 했는데... 케이블서 다시 보는데 역시나 재미를 못 느껴서..^^;
오프닝하고 중간에 오페라 장면은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