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평범한 아줌마가 어떻게 노조의 중심에 서게 되었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작 중 한편, '카트'입니다.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EXO 도경수의 인기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조금이라도 무대 근처에서 그를 보겠다며 모래사장에서 밤새고 있는 여고생들의 모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영 몇 시간 전부터 '카트'를 보겠다며 줄을 서있는 줄은, 주말 아침 현장 예매보다 더 길었기에... 사실 그가 EXO 멤버, 메인 보컬, 그리고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왔다 정도만 알았는데, 이번에 그의 인기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잡설이 길었네요. 솔직히 말해서 '카트'를 보기 전에는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이었는데, 개봉 전에 운좋게 '카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카트'는 어쩔 수 없는 일부 단점 속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네요,
대한민국 대표마트 더 마트, 언제나 고객만족 서비스를 실천하기 위해 온갖 컴플레인과 잔소리에도 꿋꿋이 웃는 얼굴로 일하는 더 마트의 직원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받게 됩니다. 정규직 전환을 눈 앞에 둔 선희(염정아)를 비롯,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88만원 세대 미진(천우희)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들이 용기를 내어 서로 힘을 합치게 되는데...
염정아, 문정희를 비롯한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 그리고 믿고 보는 영화 제작사, 명필름에서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카트'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카트'를 보기 전에는 영화가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요, '카트'는 어쩔 수 없이 정치색을 띠고 있는 작품인데, 정치적으로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설득시킬 수 있느냐가 이 영화의 관건일 겁니다. 하지만 영화가 억지감동코드를 가져가는 순간 이 영화가 지닌 가치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에 완급 조절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이 영화의 성패를 좌지우지 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카트'는 정말 평범한 주부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최대한 담담한 투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면서 영화의 우려를 상당 부분 씻어내는군요.
'카트'는 다양한 세대와 모습, 성격을 지닌 여성들을 캐릭터화하여 흥미로운 군상을 그려가고 있는데, 그 중 마트의 성실한 점원이었던 한선희(염정아)라는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영화를 전개시키면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똑똑하지도 않고 똑 소리나는 성격도 아니라서, 주변의 상황에 잘 휩쓸리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녀는 가사일을 도맡아 하는, 아들 딸을 가진 엄마이자 돈을 벌어야 하는 임무까지 맡고 있습니다. '카트'는 한선희라는 인물을 통해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감정부터 그녀의 믿음이 강화되는 과정, 그리고 시위로 이어지는 마무리까지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에 성공하면서, '그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영화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인간극장'이나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적인 재미는 덜 느껴지긴 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왜곡된 이해를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이 영화가 한 아줌마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대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 만든 다양한 인물 군상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5~60대로 추정되는 청소부 아주머니 순례(김영애)부터 20대 취준생 미진(천우희),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나갈만큼 법적인 지식을 꿰고 있는 혜미(문정희)와 정규직이었지만 노조에 가입하게 되는 동준(김강우),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 태영(도경수)이라는 캐릭터까지 설정해서, 이 이야기가 특정 인물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시켜주고 있더군요. 영화가 그려놓은 밑그림이 좋고, 배우 중 연기 구멍이 없어서 그런지,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이 모두 파닥파닥 살아 숨쉬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영화 개봉 전부터 아이돌 가수인 도경수의 연기력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캐릭터와 느낌이 꽤 비슷했고, 연기력도 좋았습니다.
'카트'는 이미 알고 있는 까르푸 노조 사태를 영화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까지 긴장감있게 끌고 간다는 점도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감동 코드를 위한 일부 작위적인 설정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좋은 제작 의도로 이 정도로 완성도의 좋은 영화가 나왔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특히 얼마 전에 '다이빙 벨'을 보고 실망감이 너무 컸기에, '카트'같은 영화의 등장이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아줌마가 어떻게 노조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대기업의 횡포가 어떻게 그들을 망쳐가는지에 대한 104분의 기록, '카트'는 11월 13일 개봉합니다.
* 추가적인 말
제작의도만 좋다고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하진 않을 겁니다, 사실 '카트'는 제작의도가 참 좋은 영화인데, 솔직히 말해서 오락적인 면은 부족해서 관객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화제작 '인터스텔라'가 개봉해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EXO 멤버인 도경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로 보여집니다. 젊은 친구들이 이 영화를 보고 기업과 근로자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EXO 멤버가 출연하다보니, 자연스레 홍보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네요. 도경수씨의 연기도 괜찮아서, 영화, 개인 모두 win-win하게 될 것 같습니다. 수능 끝난 뒤 극장가로 몰려들 젊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렇게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중심에는 명필름이 있었습니다. 사실 대기업의 횡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영화라 투자유치나 제작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 제작사 중에서는 규모가 꽤 큰 편인 명필름은 이 영화를 선뜻 제작했고, 아예 일부 제작사와 손잡고 '리틀빅픽쳐스'라는 자체 배급사를 만들어서 '카트'가 대형 배급사에 휘둘리지 않고, 관객들에게 최종적으로 닿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명필름은 '카트' 전작인 '관능의 법칙'부터, 모든 스태프들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해서, 월급제, 추가근무수당, 4대보험, 휴식시간까지 챙겨주는 최초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면, 기존 영화 제작비보다 인건비가 2~30% 인상된다고 하나, 명필름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포기하면서도 영화 산업에 좋은 풍토를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앞장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명필름, 앞으로도 좋은 영화 만들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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