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디바이너] 8, 90년대 올드한 스타일만 남다
얼마 전에 러셀 크로우가 내한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한 <워터 디바이너>를 보고 왔습니다. 러셀 크로우의 내한으로 인해 SNS에서 귀요미 짤방도 돌고 군 부대 내에서 시사회를 했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는 등 러셀 크로우 내한 사실은 큰 관심을 모았는데, 러셀 크로우가 직접 연출, 주연까지 맡은 영화 <워터 디바이너>는 크게 언급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어찌되었든 <워터 디바이너>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개봉 첫 주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킬링타임으로 나쁘진 않았지만, 8, 90년대의 올드한 스타일을 품고 있는 이 영화를 지지하긴 힘들어보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로 세 아들을 모두 잃은 코너(러셀 크로우). 아내마저 비통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자, 모든 것을 잃은 코너는 아들들의 시신을 찾아 호주에서 14,000km 떨어진 낯선 땅 터키로 향하게 됩니다.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적군의 땅 터키에 다다른 그는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이셰(올가 쿠릴렌코)를 만게 되고, 그들에게서 연민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들의 시신을 찾아 나선 코너는 여전히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현장에서 적으로 싸웠던 터키군 소령을 만나고 그로 인해 아들들의 생사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되는데...
호주와 터키 모두 우리나라 역사책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나라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터키와 남쪽 끝에 있는 호주 두 나라가 전쟁을 했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모르고 영화를 봤던 저는 이 영화가 상당부분 터키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 또한 모르고 봤는데, 호주의 척박한 사막의 분위기와 터키의 신비로운 느낌을 화면에 참 잘 담아냈더군요. 몇몇 장면에서는 아내를 잃은 주인공의 슬픔을 과도하게 잡아내는, 감독의 자아도취에 빠진 촌스러운 촬영이 심하게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들을 전장으로 내보낸 죄책감으로 인해 터키로 떠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출발하는 이 영화는 꽤 흥미롭게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부성애 영화로서도 괜찮았지만 <워터 디바이너>는 전쟁 영화로서도 괜찮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적국의 시신을 찾는 걸 도와줘야하는 터키 장교와, 아들을 찾기 위해 유일하게 전장에 나타난 코너와의 만남도 꽤 재미있었구요. 다만 이 영화는 코너가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아이셰와 만나 알 수 없는 로맨스에 빠지면서 생기를 잃어버립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아들을 찾아나서야겠다고 다짐한 순애보 코너가, 갑작스레 아이셰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영화가 차곡차곡 쌓아온 진중함을 로맨스가 다 무너뜨리는 느낌이었습니다. 8, 90년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올드한 설정같다는 느낌도 있었구요. 러셀 크로우의 연출 데뷔작으로는 크게 손색없긴 하지만, 2015년에 만들어졌다고 보기엔 트렌디하지도 않고 너무 올드하기만 한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그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한 듯 보입니다.
러셀 크로우의 연기력을 지적하기에는 그는 이미 너무 대단한 배우이지만, <워터 디바이너>에서 배우로서 빛난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자신이 제작 혹은 연출에 참여한 작품에 출연까지 겸하고 있는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너무 멋있게 그리려고 하다보니 영화 안에서 매력을 잃어버리곤 하는데, 이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코너라는 인물이 그랬네요. 최근에 <허삼관>의 하정우나 <노예 12년>의 브래드 피트 또한 그랬는데 똑같은 실수가 반복된 듯 보입니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코너라는 캐릭터가 <오블리비언>에서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잔상을 남겼던 올가 쿠릴렌코는 <워터 디바이너>에서도 여전히 예쁘긴 했지만, 캐릭터의 문제 때문인지 그닥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는 않았습니다.
<워터 디바이너>는 최악까지는 아니고 킬링타임용 영화로 나쁘진 않았지만, 지지하기에는 완성도가 조금 부족한 영화였습니다. 부성애로 시작해서 로맨스로 끝나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종잡을 수 없었고 특히 이 영화가 품고 있는 8,90년대 스타일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는데, 젊은 관객들말고 4, 50대 이상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군요. 개인적으론 러셀 크로우는 앞으로 연출 말고 연기만 쭉 했으면 하는 바람이며, 굳이 연출을 하실 거면 주연은 하지 않으시는걸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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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감성이라 부모님 보여드리기 좋은 영화죠.
국제시장, 허삼관에 이어 올 겨울 부성애 시리즈를 모두 클리어하신 60대 아버지는 이 영화를 최고로 꼽으셨습니다.
엄마는 터키 풍경과 명소(...)를 좋아하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