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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소설] 주님 뜻대로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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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오늘도 엄마는 밥상 앞에서 기도를 한다. 
난 엄마의 기도를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는다.

엄마는 원래부터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다. 
3년전 보험영업을 시작한 엄마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겠다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험을 많이 판 것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영업은 내팽개치고 교회일에만 열중하기 시작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마음 둘 곳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에 의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럴때면 진작 엄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느라 전화를 통 못했다. 
다 핑계겠지... 집에 혼자 계신 엄마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변한 모습이 익숙한 건 아니다. 
6개월만에 집에 내려온 내게 엄마는 하루종일 교회 얘기, 주님 얘기만 하신다. 
그리고 주일에 같이 교회에 가자고 한다. 
가기 싫어서 약속 있다고 막 둘러댄 끝에 겨우 빠져 나왔다. 
아마 다음 번에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3개월 뒤,

엄마가 확실히 변했다. 
집에 자주 내려가진 못하지만 거의 이틀에 한 번은 엄마와 통화를 했었다. 
전에는 내 안부를 묻거나 옆집 슈퍼아줌마랑 수다 떤 얘기, 텔레비전 얘기 등 시시콜콜 이야기를 했던 엄마는 이제 교회얘기만 한다. 
그리고 내게 자꾸 주님을 믿어라, 그곳에서 교회에 다녀라며 이상한 잔소리를 한다. 
처음엔 막 둘러대다가 정도가 심해지자 아예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엄마 전화가 오면 받지 않는다. 


5개월 뒤,

지금쯤 집에 한 번은 내려갔어야 했지만 내려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 엄마도 연락이 뚝 끊겼다.
엄마가 걱정은 되지만 전화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변해버린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6개월 뒤, 

집이 걱정은 되지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내려놓을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가는 길에 인터넷을 보다가 뉴스를 봤다. 

'교회 장로, 3억원 헌금 챙겨 도주'

엄마 때문에 관심이 가서일까?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인터넷에 찾아보게 됐다. 
마침 다음 아고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아고라 글은 한 교회 장로가 교회 증축을 위해 신도들이 모은 헌금과 교회 운영금을 들고 잠적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글에서 본 것은, 그 교회가 바로 엄마가 다니던 교회라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걱정돼서 곧장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걱정이 돼서 아르바이트를 하루 쉬고 집으로 내려갔다. 


집에 도착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은 며칠 동안 비어있었던 것 같다. 
사람의 온기는 없고 식탁과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싱크대에는 오랫동안 설겆이를 하지 않은 그릇들에 곰팡이가 피고 초파리가 날리고 있었다. 
나는 집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러다 안방을 열어보고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안방 바닥는 좀비처럼 초췌한 몰골의 엄마가 앉아있었다. 
그 자리에서 용변을 본 것처럼 악취가 나고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고 동공도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도저히 산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엄마! 엄마, 괜찮아?! 엄마!"

난 가까이 가서 엄마를 흔들었다. 
엄마는 여전히 초점없는 눈으로 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지막하게 뭔가를 중얼거렸다. 

"주님께서... 주님께서... 아무...말...이..없으셔...주님께서..."

나는 일단 119에 신고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겨우 기력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멍하게 있었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의사는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두 쏟아붓고 이모와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엄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집으로 돌아와서 먼지 쌓인 집을 청소했다. 
엄마가 집을 담보 잡혀서 교회에 다 갖다 바쳤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자란 이 집도 비우게 됐다. 

마침 옆집 슈퍼아줌마가 찾아왔다.
슈퍼아줌마는 엄마와 가장 친한 말동무이자 어릴때부터 나를 지켜봐 온 분이다.
아줌마는 내가 없을때 몇 차례 엄마를 찾아왔던 것 같았다. 

"니 엄마가...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주님께서 시켜서', '주님 뜻대로' 이런 말이었어. 교회에 돈을 그렇게 바치는 걸 보고 내가 말렸는데 통 말을 안 듣더라고... 나도 지쳤지. 니 엄마가 나한테도 전도를 하려고 한 통에 대판 싸웠어. 너도 알잖아. 나 절에 다니는 거... 아무튼 그러고 연락이 뜸해졌지. 가게 손님들이 교회 얘기를 하길래 걱정돼서 니네 집 와봤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더라고... 전화해도 받지 않고... 그래서 나는 니 엄마가 교회 신도들하고 그 장로놈 찾으러 간 줄 알았어... 이렇게 됐을 줄은..."


병원에 있는 엄마는 여전히 식사를 하지 않은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숨쉬는 것 말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매사에 '주님 뜻대로'라고 말하던 엄마에게서 아무래도 주님이 사라진 것 같다. 
내가 아깝게 장학금을 놓쳤을때도 '주님 뜻대로', 엄마가 보험을 팔았을때도 '주님 뜻대로'라고 말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교회의 그 사건은 주님이 사라진 것과 같았고 그로 인해 엄마의 의지도 사라진 것이다.
모든 일을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님 뜻'으로 돌렸는데... 그런 주님이 배신을 했으니...


9개월 뒤, 

학교를 휴학했다. 
지방에 기숙사가 지원되는 공장으로 옮겼다. 
원룸 보증금을 빼서 병원비에 보탰다.
월급은 병원비에 보태고 남는 돈은 적금을 넣고 있다. 언젠가 엄마가 괜찮아져서 퇴원하면 다시 살 집은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척들 사정도 넉넉치 않은 편이라 많은 병원비를 도와줄 수는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일이 바쁜 덕에 엄마에게는 거의 가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휴학을 하고 엄마가 괜찮아지시면 다시 돌아오라고 했지만 엄마가 괜찮아지면 집으로 내려가 엄마와 함께 살 생각이다. 
내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서 이렇게 된 일이라면, 이제는 엄마와 함께 지내며 엄마를 돌봐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퇴원하면 고향에 있는 대학으로 재입학 할 생각이다.

어느날, 잔업을 마치고 늦은 시각.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앉았다. 
늦은 시간에 엄마를 돌보는 의사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불안했지만 설마설마 하며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서 잘 돌봐주고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길까 싶었다.

...
...
...





엄마가 죽었다고 한다.
갑작스런 심장마비였다.
엄마는 심장이 안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예전에는 등산과 자전거를 즐길 정도로 건강한 편이었다. 
심장이 뛰는 것도 주님의 뜻이었을까?

엄마를 모시고 살려는 꿈이 부서졌다.
힘겹게 지켜온 희망이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초점 잃은 눈으로 한곳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마치 그때의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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