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단편소설] 군생활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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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살했다.
선임들의 갈굼은 나날이 심해지고 전입 한달도 안 된 신병들도 이젠 나를 무시한다. 입대하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친구들의 신임을 받던 나였다. 명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던 나는 교수님들께도 인정받던 '미래의 국회의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허약했던 몸과 굼뜬 행동 탓에 군대생활에 어울리진 않았다. 진지공사를 하면 제대로 삽질하지 못했고 훈련을 하면 동기들보다 뒤쳐졌다. 나만 뒤쳐져서 나만 갈굼 먹으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연대책임. 내 잘못은 결국 동기 전체가 책임져야만 했다. 처음엔 나를 감싸주던 동기들도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를 멀리했다. 그나마 내 사수가 나를 감싸줬지만 결국엔 참지 못한 내가 중대장에게 소원수리를 넣자 사수마저 나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군생활이 나를 힘들게 해도 나는 이 악물고 버텼다. 어차피 18개월만 참으면 나간다. 18개월만 사람이 아닌 셈 치고 끝까지 버텼다. 그나마 폭행은 없는게 다행이었다. 욕설따위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그저 지독한 무관심과 무시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친구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내 군생활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런데 편지를 열어보자마자 내 위로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우리 커플과 함께 항상 어울려다니던 친구 철민이. 여자친구가 그 녀석과 사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자기를 잊어달라고 한다.
한순간에 친구와 애인을 모두 잃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군대라는 이곳에 손발이 꽁꽁 묶인채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됐다. 가슴 속에 분노와 절망만 사무친 나는 결국 이런 선택을 하게됐다.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죽어버릴테니 어디 니들끼리 잘 살아보라고... 그리고 나는 자살했다. 초소 경계근무 중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가장 고통스럽지 않게 내 생을 마감했다.
처음엔 눈앞이 하얘졌다. 마치 강렬한 햇빛을 마주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감은 눈처럼 새까매졌다. 어둠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는 잠이 든 것처럼 검은 어둠에 있었다.
그러다 눈을 떴다.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모양의 판넬이 이어져 있었고 하얀 형광등이 보였다. 천장이다. 분명 나는 죽었는데...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낯선 내무반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때 처음보는 사람이 내 뒤통수를 쳤다. 아프다. 꿈은 아닌데...
"야이 개새끼야, 신병이 어디서 여태 쳐 자빠져 자고 있어?"
"예...예...?"
"예~...예~! 어 이 씨발놈이 군대에서 예~! 이거 완전 개꼴통이구만!"
처음보는 사람이 내 고참인 척 한다. 그리고 나는 일병이었는데 신병이라고 한다.
"야야 내비둬라. 어디 고문관 새끼 한둘이냐"
"아이 최뱅자임, 그래도 '예'는 너무 하잖습니까"
"지는 사흘밤낮을 울었으면서 흐흐흐흐"
"아이 최뱅자임, 신삥 앞에서 그런거를~"
"키키킥! 마 신병! 일로 와봐"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예전 군인들이 입었다는 남색 활동복과 낡은 깔깔이를 입고 있었다.
"야, 신병"
"이...이병! 김!철!구!"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 넌 분명 자살했는데 말야"
"예....예! 그렇습니다!"
"니 뒤통수 만져봐바"
고참의 말대로 뒤통수를 만져보고 깜짝 놀랬다. 뒤통수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그제서야 그 고참의 목에도 길고 시퍼런 멍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 나를 때린 고참의 목에도 마찬가지였다. 내무반에는 몇 명의 고참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목에 멍이 있거나 뒤통수에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여기는 모두 자살한 병사들이야. 한마디로 죽은 자들의 내무반이지"
"주...죽은자들의 내무반?"
"그래, 처음엔 나도 몰랐어. 그런데 행보관님이 말씀해주시는거야. 자살한 병사들은 저승으로 못 가고 부대의 지박령이 된다고... 그리고 이곳은 지박령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내무반이지. 그러니깐 죽어서 하는 군생활이라는거야"
"그...그럼 군생활은 몇 년입니까?"
"몇 년? 아무도 몰라. 날 봐. 난 97군번인데 이제 겨우 병장이 됐어. 이곳의 진급체계도 아무도 몰라. 저기 쟤 보이지. 85군번인데 26년째 상말(상병 말호봉)에서 진급이 안돼. 난 운이 좋게 18년만에 병장을 달았지만 말야. 그리고 더 중요한게 뭔지 알아?"
"뭐...뭡니까?"
"아직 아무도 전역하지 못했어"
그랬다. 군생활이 싫어 죽음을 선택했는데 그곳에는 또다른 군생활이 있었다. 전역도 없고, 휴가도, 외박도 없는 군생활. 그제서야 내게 밀려온 두려움은 엄마와 아빠, 형, 친구들, 국회의원이 되겠다던 내 꿈, 우리집 고양이 루루, KFC 징거더블다운맥스, 불닭볶음면, 무엇보다 살아갈 수많은 나날들. 내가 사랑했던, 나를 지탱했던 그 모든 것들과 영영 이별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곳을 나갈 수 없다. 아마 내 가족이 늙어 죽더라도 나는 그들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영원히 이곳에서 군생활을 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군생활을 하다가 귀신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길 바란다. 그들은 그저 다른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아저씨들이다.
군대의 암울한 페이소스이군요~
재밌는 글,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