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봤습니다. 2.35:1로 찍은 아침드라마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뒤틀린 영화였어요.
이상적인 스무살의 이미지와 감독이 가진 판타지 속 스무살 인생, 거기에 미치광이 캐릭터까지 모아 한 그릇에 넣고 똥같은거 한스푼 해서 신나게 섞으면 이런 영화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었네요. 스무살을 훨씬 지나 온 사람이 그리는 '스무살 판타지'의 한계를 볼 수 있습니다.
여성관객 맞춤형 배우들을 심고, 젊은층 관객들이 선호할 코드를 모조리 쑤셔넣었더군요. 거기에 깨알같이 스물을 지나온 사람들을 위한 추억도 넣어두었고, '청춘물'이라 불리는 영화들에서 쓰이는 클리셰도 듬뿍 있었습니다. 험한일 하는 여자와 돈많고 잘생긴 남자의 운명적인 머시기 따위의 아침드라마풍의 컨셉도 들어가 있었으며, 한국영화 특유의 유머강박도 빼놓지 않았어요. 결국 어디서 본듯한 느낌의 연속인 영화. 이럴거면 굳이 영화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이 영화, 이 영화 그리고 이 영화 보세요" 하는 '이병헌 감독이 추천하는 청춘 영화 베스트 10! (짜잔)' 따위의 리스트를 공개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네요.
물론 전체적인 청춘팔이와 별개로 섹스타령 자체는 새롭긴 했습니다. 극 초반의 대부분이 섹스라는 토픽에 대한 가타부타로 할애되는데 이런 화장실 유머가 한국영화에서 보여지는게 놀라웠어요. 다만 초반부터 그런 형태의 강한 대사들을 지르다보니 후반부의 박자가 너무 약해져버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주제를 바꿔 넘어가면서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나 빠른 템포로 시작한 것 치고 뒷부분에서 페이스 되찾은걸로 대단하다 해야하려나요. 하여간 그 과도한 핑퐁은 너무 정리가 안 되어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거니받거니식의 연극형 연출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타란티노 수준 대사력을 갖췄을때나의 이야기지, 이렇게 어설픈 경우는 싫네요.
막판 액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좋아서 기억에 남는건 아니고 너무 길어서 기억에 남아요. 도무지 끝나질 않던데요. 분위기에서 킹스맨의 느낌을 받았는데 왜 이건 비슷한 컨셉을 취하면서도 묘하게 구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대 연출력에 애도.
감독이 본인 스무살 시절 못해서 아쉬웠던 모습들을 영상화하며 대리만족을 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후반부에는 역시나 교훈질이 시작되었는데, 넣다넣다 잘 안 되니 결국 나래이션을 깔아버리기에 이르던데요.
교훈같은 부분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부분이라 이렇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총체적 개소리로 보는 입장에서 이 영화의 내용은 "니들은 젊으니까 좀 막살아도 돼, 물론 그 시기 나는 그렇게 안살았지만ㅋ"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독 본인은 일전에 인터뷰에서 청춘에 되도않는 교훈을 주려는 목적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 인터뷰는 본인이 꼰대질에 민감하다는것만 인증했을 뿐 영화의 메시지는 여전히 그러한 것과 뿌리를 함께합니다.
젊은날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는 이십대는 넘어지기는 커녕 살짝 비틀거리기만해도 상당한 압박을 겪는,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위태로운 시기입니다. 그걸 나이 든 입장에서 이토록 일차원적으로 이야기하는건 좀 우습네요.
차라리 족구왕같이 밑도끝도없게 밝아버려서 허탈히 기분좋아지는 청춘영화가 더 취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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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기만 하겠다고 뻔뻔하게 만든 영화인데,
전혀 재밌지가 않아요
후기잘읽고갑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구리다고 느낀 복합적인 감정들, 하지만 굳이 이 영화 때문에 시간 들여서 곱씹고 싶지 않았던
생각들이 잘 정리된 글 같네요. 말 장난은 잘한다고 해주고 싶은데 보는 내내 연출력이 참 없다고 느꼈어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