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역시, 류승완 감독은 달랐다
근래에 <베를린>, <부당거래>같은 작품들을 연거푸 내놓으면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류승완 감독이 신작 <베테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뻔한 형사물처럼 보여서 크게 기대하지 않으려했는데, 이 작품은 원래 5월에 개봉하려고 했으나, 작품이 너무 잘나오는 바람에 성수기인 8월로 개봉이 미뤄졌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류승완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드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얼마나 잘나왔길래 이런 소문까지 도는지 매우 궁금했었는데요, 제가 본 <베테랑>은 오락영화로서 단점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만큼 유쾌, 상쾌, 통쾌한 오락영화였습니다.
한번 꽂힌 것은 무조건 끝을 보는 행동파 서도철(황정민), 20년 경력의 승부사 오팀장(오달수), 위장 전문 홍일점 미스봉(장윤주), 육체파 왕형사(오대환), 막내 윤형사(김시후)까지. 겁없고 못잡는 것 없고, 봐주는 것 없는 특수 강력사건 담당 광역수사대. 오랫동안 쫓던 대형범죄를 해결한 후 숨을 돌리려는 찰나, 서도철은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안하무인인 조태오와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는 오른팔 최상무(유해진). 서도철은 의문의 사건을 쫓던 중 그들이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건들면 다친다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서도철의 집념에 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조태오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포위망을 빠져나가는데...
전 물론 <베테랑>에 대한 긍정적인 소문을 많이 들었던 터라, 영화에 대해 크게 기대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제 주변에서는 <베테랑>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가 수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더 이상 이런 영화가 신선함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베테랑>은 형사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편견을 과감하게 깨줄만한 작품입니다. 액션이든, 스토리든, 배우들의 연기든, 어떤 면에서도 말이죠.
류승완 감독은 이미 <짝패>같은 영화로 액션 연출의 정점을 찍었던 바 있지만, 여기에다 이야기적으로도 흥미로운 작품들, 예를 들면 <베를린>이나 <부당거래>같은 영화들을 연거푸 내놓고 있는데요, <베테랑>도 이런 작품들과 궤를 함께 하는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정통 액션영화를 지향하는 작품은 아니면서도, <베테랑>의 액션씬들이 절대 허투로 찍히지 않았습니다. 부산항에서의 액션 시퀀스들도 굉장히 짜릿했지만, 명동 한복판에서 차량이 질주하고,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몸을 날리며 떨어지는 장면은 류승완 감독이 아니면 누가 완성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도전적이면서도, 액션 영화에 잔뼈가 굵은 류승완 감독의 연륜이 묻어난 촬영된 시퀀스였습니다,
<베테랑>은 조태오라는 역대급으로 얄미운 캐릭터를 만들어냈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에도 찝찝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캐릭터들 간에 비중을 잘 조합했기 때문일 겁니다. 단순히 서도철 vs 조태오의 대결이었다면 조태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겠지만, 서도철의 편에는 오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조태오의 옆에는 최상무가 든든히 자리지키고 있기 때문에 대결이 더욱 쫄깃했던 것 같습니다. 매번 주옥같은 명대사를 남겼던 류승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대사들이 곳곳에 배치해놓는 동시에, 영화 맨 마지막에는 폭소를 유발하는 까메오 1명까지 숨겨놓았습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휙휙 지나가는 동시에 유쾌한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죠.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할 수는 있으나, <베테랑>을 보고 싫어할 관객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네요.
맹인 검객, 복싱챔피언에 도전했던 국수집 사장님, 여러번의 형사 연기로 다져진 황정민, 악역이라는 도전과 더불어 강도높은 액션까지 소화해낸 유아인, 그리고 큰 키와 긴 다리로 유례없는 액션 선을 만들어내는 장윤주까지 모두 제 몫을 다 해냅니다. <베테랑>으로 형사 캐릭터를 다섯번째로 연기했다는 황정민은, 우려와는 달리 또 한 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성공하며, 특히 악역이지만 굉장한 매력을 뿜어내는 유아인, 연기력 구멍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장윤주가 굉장히 눈에 들어오네요. (두 배우는 올 연말 영화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신인여우상 후보에 무난히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꼭 언급하고싶은 배우가 한 명 있는데 바로 김시후씨입니다. <반올림>, <친절한 금자씨>, <써니>, <소녀> 등에서 조용하고 정적인 캐릭터만 주로 연기하던 김시후씨는 이번 작품에서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막내 형사로 등장하는데, 코믹 연기도 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모로 올해 초에 있었던 대한항공 땅콩 회항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영화가 더 먼저 촬영되었습니다) 열정 넘치는 착한 형사, 돈 많은 악역과의 대결 구도를 그린 영화는 이미 수차례 보아왔지만 <베테랑>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이면에 대한 감독의 통찰력과 시원한 일격까지 빛난 영화였습니다. 감독의 연출력과 더불어 황정민, 유아인을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까지 모두 인상적이었던 <베테랑>은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는 물론 흠잡을 데 없을만큼 우수한 완성도 영화였습니다. 믿고보는 류승완표 오락 영화 <베테랑>은 8월 5일 수요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적극 추천드려요! :D
* 유아인씨는 벌써 올 연말 영화제에서 유력한 남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네요. 연말 시상식 남우조연상 부문에서 유아인(베테랑) vs 유아인(사도) vs 유해진(소수의견) vs 유해진 (베테랑 혹은 극비수사) 빅 매치가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요? (여우주연상 부문에서는 전도연 (무뢰한) vs 전도연(협녀:칼의 기억)의 대결이 성사되면 진짜 꿀잼일듯ㅋㅋ)
저도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본 영화중에는 단연 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