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팬서' 초간단 리뷰
1. '블랙팬서' 직전에 본 마블영화인 '토르:라그나로크'에 대해 꽤 만족하면서 봤다. 평소 마블의 이야기에 대해 '과학적 가능성이나 설득력도 없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 영화'라는 생각을 가진 입장에서 이토록 말도 안되게 찍은 것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 말도 안되게 찍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솔직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라그나로크'를 좋아한다. 마블영화 중 '라그나로크'와 반대방향에 서있는 영화는 단연 '윈터솔져'라고 본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음모론을 끼얹어서 꽤 그럴싸하게 만든 영화였다. '윈터솔져'에 대해 나는 '너무 진지하게 만들어서 마블 아닌 것 같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2. 어차피 말도 안되는 마블의 세계관에 '블랙팬서'는 또 다른 말도 안되는 영화였다. '블랙팬서'는 외계에서 온 운석(비브라늄)으로 세계 최대의 부(富)를 축적한 '세계 최빈국' 와칸다의 국왕 티찰라(채드윅 보스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일단 배경부터 마블영화답게 말이 안된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라이언 쿠글러다. 그의 영화 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본 기억이 난다. 꽤 흥미로운 영화였으며 무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영화다. 이 현실적인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 마블의 블록버스터를 만든다고 한다. 결국 라이언 쿠글러의 '블랙팬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재탄생해버렸다.
3. 영화의 시작은 1992년 L.A다. 아주 어린 시절인 그때의 뉴스를 기억해보자면 인종폭동이 발생했던 해였으며 한인타운의 한국인들은 스스로 폭동 세력에 저항해 재산을 지켰다. 그러니깐 인종차별이 극에 달하던 때가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시대에 티찰라의 아버지 티차카 국왕의 동생 은조부(스터링 K.브라운)는 L.A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형과 달리 급진적인 운동가로 흑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무력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 두 사람의 갈등은 아들 세대에 와서 티찰라와 에릭 킬몽거(마이클 B.조던) 사이에도 이어진다. 즉 '블랙팬서'의 가장 큰 갈등 축은 흑인들의 온건파 리더격인 티찰라(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와 급진파 리더를 지향하는 킬몽거인 셈이다.
4. 두 사람의 갈등은 꽤 낯이 익다. 돌연변이의 권리를 위한다는 큰 뜻은 같지만 대응 방식이 달랐던 두 사람.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와 에릭 랜셔(마이클 패스벤더)를 연상시킨다(아무래도 이런 갈등이 흑인사회 내부에서도 정말 존재하는 모양이다). '엑스맨'의 재미를 주는 가장 큰 축 중 하나인 두 사람의 갈등은 '친구'와 '적'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에서 온다. 그에 비하면 티찰라와 킬몽거의 대립은 극단적이다. '블랙팬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둘을 친구로 만들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흑인의 운명이 아니라 인류의 운명이 달린 싸움이기 때문이다.
5. 킬몽거의 캐릭터가 꽤 매력적이다. 마블 최고의 매력덩어리 로키(톰 히들스턴)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 인물처럼 드라마가 넘치는 캐릭터다. 극단적인 분노도 있고 그리움과 애절함도 있다. 영화는 킬몽거의 여러 얼굴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엑스맨'을 보면서 에릭에게 설득력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킬몽거에게도 꽤 설득당할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티찰라보다 킬몽거가 더 매력적이었다. 단지 킬몽거와 로키를 비교해봤을때 거의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킬몽거에게는 유머감각이 없다는 점이다.
6. 사실 '블랙팬서'는 마블영화답지 않게 전체적으로 유머감각이 없다. 티찰라를 보면 간혹 "브루스 웨인인가?" 싶을 정도로 혼자 대단히 심각하다. 게다가 킬몽거도 대단히 진지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영화에서는 누가 유머를 담당해야 할 지 궁금해진다. 크리스 록의 느낌도 나는 다니엘 칼루야도 진지하다(이 이야기에서 제일 진지하다). 개그를 시도하는 캐릭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슈리, 음바쿠). 그런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다 보니 이들 두 인물의 유머는 마치 장례식장에서 농담하는 것처럼 민망해진다.
7. 킬몽거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대단히 많다. 티찰라의 친구 와카비(다니엘 칼루야)나 왕의 근위병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티찰라의 연인 니키아(루피타 뇽) 등. 캐릭터 보는 재미가 넘친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블랙팬서'는 마블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MCU의 기존 캐릭터들과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블랙팬서'의 모든 캐릭터 중 다른 MCU에 등장했던 캐릭터는 에버렛 로스(마틴 프리먼)가 유일하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독립된 하나의 영화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다른 MCU 영화 아무것도 안보고 '블랙팬서'만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8. 결론: 마블 영화를 보면서 흑인인권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블랙팬서'는 1992년의 흑인폭동에 대한 내부적인 반성과 함께 앞으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흑인사회에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시대에서 강압적이고 노골적인 인종차별 기조가 풍기는 가운데 '블랙팬서'는 트럼프의 칼에 칼로 맞서는 대신 "저 미개한 백인 뚱땡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줘라"고 충고하는 듯 보인다. '블랙팬서'는 약간 다른 의미의 '엑스맨' 정도로 봐도 될 듯 하다.
추신1) 그래도 마블영화라고 쿠키영상에서는 MCU와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근데 쿠키영상의 그 캐릭터, 복장도 그렇고 여성팬들 심쿵하게 만들 느낌이다. 뭐랄까...갓 샤워하고 나온 느낌?
추신2) 사실 자갈치 아지매가 서울말 쓰는 장면은 다소 어색했다(확실히 자갈치 아지매 사투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갈치 아지매 스웩은 확실히 담아낸다. 자갈치 시장에서 상인 아지매랑 물건 사는 어머님이랑 흥정하는 거 보면 '쇼미더머니' 저리가라다. 그 정도 스웩은 '블랙팬서'에서도 등장한다.
추천인 18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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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노트북 시계가 좀 다르네요 ㅋㅋ
초간단 리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주 심도 있는 분석이 함께 하는 멋진 리뷰였네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