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평론가 [액트 오브 킬링] 평가
출처: http://blog.naver.com/lifeisntcool/220189836020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11월20일 개봉작
'액트 오브 킬링'을 보았습니다.
강렬하고 대담하며 탁월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학살자들에게
그들이 저질렀던 행동을 스스로 재연해
영화로 만들 것을 요청-관철함으로써 탄생된 '액트 오브 킬링'은
일종의 메이킹 필름과도 같은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사나 이미지라는 것은 결국 소재나 대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觀)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이 영화에서
"당신들은 어떤 일을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당신들은 스스로가 저지른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핵심 질문으로 던지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학살자 스스로의 재연과 재구성이라는 극적인 형식을 고안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연기-촬영-감상의 세 단계를 직접 그들이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오래 전 '자랑스러운' 과거에 3단계의 다리를 놓아 거리를 두고 숙고하게 합니다.)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서 '액트 오브 킬링'에 대한 평가의 핵심은
이 영화의 과격한 방법론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겠지요.
저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액트 오브 킬링'이 결국 다루려고 있는 것은
악 자체가 아니라, 악이 스스로 그려내는 자화상이니까요.
극중에서 점점 과격해지고 모호해지는 장면들은
학살자들 스스로의 이미지가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생래적 균열의 끔찍한 표증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개별적인 기억의 결과가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는 체제의 조장에 따라
얼기설기 덧대어진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내세우는 위압적인 서사는
피해자들의 공포에 질린 침묵과 강요된 망각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때의 체제는 단지 인도네시아의 부도덕한 정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펜하이머는 학살에 대해 묵인하고 원조했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까지 명확히 칼끝을 겨눕니다.)
그러니까, '액트 오브 킬링'은
역사 속의 예외적인, 타고난 악인들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 악행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조건과 체제의 폭력성에 대한 영화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영화를 보면서
5.18이나 4.3 같은 우리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겹치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
-아래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중반부까지 악마에 대한 전율로 소름이 끼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그 악마에게서 인간의 얼굴을 끝내 엿보고나면
결국 길고 긴 탄식이 흘러나오게 되지요.
하지만 악마의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걸까요.
수백만명의 죄없는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엄청난 비극 앞에서
학살의 집행자가 수십년 만에 뒤늦게 흘리는 눈물은,
설혹 그게 그의 진심이라고 할지라도,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추천인 1
댓글 5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인간의 잔혹한 역사가 여지 없이 드러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가치나 존엄성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더군요
숭고하게 죽어간 위인들을 보며 우상화 시키곤 했던 시절과는 반대로
인간의 '악'자체를 경험하게 되고 나니..
무어라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저시대에 저 상황에 처해 있다면..
과연 나는 '악'에 대항할수 있었을까?
물론 제가 바라보는 개인적인 저의 관점이지만..
인간은 악을 닮아가거나 악인줄 알고 행동하거나..
악이라도 스스로 본능적으로 회개할수 있거나 후회할수 있다고 믿었던.. 부분이
한번에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순간 순간 동정심이 생기다가도..
행여.. 아무 죄없이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면..
여지없이 분노가 눈물이 나더군요
아마 올해 가장 .. 아니 제 생애 가장 잔인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