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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 '더 레슬러'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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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 예매권이 생겼는데 '버드맨'을 볼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볼까 고민했다. 어쨌든 둘 다 재미난 이야기꺼리가 나올 영화다. 평일 낮 시간에 극장 안에 한 12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이게 잘 되는건지 안되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이 스포일러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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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버드맨'은 선입견을 가지고 본 영화다.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를 읽을 때부터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바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 '더 레슬러'다. '버드맨'과 '더 레슬러'는 지나칠 정도로 닮아있다. 마이클 키튼과 미키 루크 모두 '왕년의 스타'였고 영화는 그들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두 영화는 모두 '최후의 열정'을 불 태우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마도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 글에는 모두 4명의 사내가 등장할 것이다. 마이클 키튼과 리건 톰슨, 미키 루크와 랜디 '더 램' 로빈슨. 열정을 불 태운 배우들과 레슬러, 그리고 슈퍼스타가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최후의 열정을 불 태우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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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키튼은 80년대와 90년대에 영광을 누린 배우다. 특히 팀 버튼과 함께 한 '배트맨', '배트맨 리턴즈'는 모두가 알다시피 그 영광의 정점에 있다. '퍼시픽 하이츠'나 '결혼의 조건', '비틀쥬스'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그는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전성기는 몹시 짧은 편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팀 버튼과 함께 한 작품 외에는 영광의 순간을 찾는게 쉽지 않을 지경이다. 한마디로 '마이클 키튼=배트맨'인 셈이다. 20년이 넘게 이 공식은 깨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연기한 '버드맨'은 마이클 키튼 그 자체인 영화였다. 20여년 전 버드맨으로 명성을 얻은 스타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연극을 제작·연출한다. 마이클 키튼 역시 '버드맨'에서는 그간 보여주지 못한 엄청난 연기를 선보인다. 마치 그는 배우로서 오랜 경력과 역량을 모두 쏟아부은 것 같았고 거기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바로 '배트맨'을 지우는 일. 마이클 키튼은 '배트맨'을 지울 수 있는 작품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배트맨' 이후 20여년간, 그는 여전히 '배트맨'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버드맨'에서 도망치려 하던 리건 톰슨은 기어이 '버드맨'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그 과거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과거를 받아들일때 그는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마이클 키튼이 이 결론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그건 '버드맨' 이후 그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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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루크 역시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한 엄청난 인기의 슈퍼스타였다. 특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 준수한 미모를 뽐내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그는 '나인하프위크'나 '엔젤하트', '보디히트', '이어오브드래곤'같은 영화들을 남겼다. 특유의 섹시한 외모는 여심을 녹였고 영화 속에서 보여준 마성의 매력은 '원조 나쁜남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마약과 성형중독 때문이었다. 그 아름답던 외모는 망가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주연의 위치에 오를 수 없는 배우가 됐다. 왕년의 영광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더 레슬러'는 '버드맨'에 비하면 한결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여기에도 불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붓는 한 남자, 랜디(미키 루크)가 등장한다. 삶의 끝에 몰린 이 남자는 사랑하는 연인 캐시디(마리사 토메이) 지켜줘야 할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와의 행복한 삶을 뒤로 하고 최후의 레슬링을 시작한다. 그저 그런 B급 배우로 몰락한 미키 루크에게 '더 레슬러'는 최후의 레슬링과 같은 영화였다. 미키 루크 역시 '더 레슬러'에서 그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원래 연기 못하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연기보다 스타성이 더 주목받던 그에게 '더 레슬러'는 '영화배우 미키 루크'로 거듭나는 계기를 안겨준 작품이었다.

'더 레슬러'는 그래서 더욱 산산히 불태워버린다. 정말로 영화 속 랜디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이카루스처럼 3단로프에서 점프를 한다. 나락에 떨어졌던 남자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은 리건 톰슨의 모습보다 한결 더 처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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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삶이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30대 중반이 돈 요즘, 자주 그런 것을 느낀다. 사실 내용은 흔한 것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 걸", "그때 그 여자에게 조금 더 잘해줄 걸", "가능성이 있을때 영화공부에 더 집중할 걸" 등등. 청춘이 끝나가는 것을 느낄 때 쯤에는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더 열정적으로 살았더라면 지금의 삶은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영광의 시절을 보낸 두 배우, 마이클 키튼과 미키 루크 역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미 영광의 시절이 끝났을 나이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운다. 이것은 상당히 계몽적인 이야기다. 나는 계몽적인 이야기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건 다른 대체할 이야기꺼리가 없다. 그리고 그 계몽적인 결론이 바로 삶의 확고한 진리인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결론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관념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있는 꺼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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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는 유독 '결혼 할 나이', '자식 볼 나이', '손주 볼 나이', '돈 벌어올 나이' 등이 존재한다. 사실 꽤 갑갑한 소리다. 어른들이 말하는, 그리고 사회적으로 박혀있는 고정관념들은 어쩌면 우리의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나이 40에 에이핑크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우고 밴드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삶에 있어 어느 한 순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건 말이다. 

랜디와 리건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퇴장해야 할 시기다. 랜디는 더 이상 프로레슬러로서 영광을 누릴 수 없는 상태고 리건은 무비스타로서 영광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 이들은 모두 커리어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다. 이들은 왜 이토록 모든 것을 걸었는가? 이들이 불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몸이 재가 될 지언정 얻고 싶었던 것, 바로 '행복'이다. 

굳이 거창하고 계몽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버드맨'과 '더 레슬러'가 보여준 행복은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운, 그 자체에 있다. 삶에 있어 단 한순간이라도 모든 것을 걸었다면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그는 행복한 삶, 후회없는 삶을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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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리 포장해도 이건 너무 계몽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이 계몽적인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울릴 것이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어느 소년,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었던 어느 소녀는 회사를 다니거나 가정주부가 됐을 것이다. 어떤 꿈을 꿨고 어떤 실패를 맛 봤건, 그들 모두는 '버드맨'과 '더 레슬러'를 보며 잃어버렸던 열정을 찾으려 할 것이다. 만약 그 열정을 찾았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그 열정을 쏟아 보자. 적어도 지쳐서 숨만 쉬는 삶보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버드맨'과 '더 레슬러'는 행복을 쫓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불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만큼 당신 삶에서 열정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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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1) 두 영화의 차이점이라면 '더 레슬러'는 한가지 화두에 집중한 반면, '버드맨'은 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하는 이야기는 '버드맨'이 건넨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심도있게 풀어낸 영화가 바로 '더 레슬러'다. 

여담2) 그리고 '버드맨'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리건 톰슨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튼)나 샘 톰슨(엠마 톰슨), 레슬리(나오미 왓츠), 제이크(자흐 갈리피아나키스), 그 밖에 많은 캐릭터, 혹은 그들의 관계.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춰도 이야기꺼리가 생긴다. 이건 '버드맨'이 굉장히 지능적인 영화라는 증거다. 물론 이 글에서는 내가 초점을 맞춘 부분에만 집중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여담3) 또 두 주인공의 딸들이었던 샘('버드맨')과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를 비교해봐도 재미난 이야기꺼리가 생긴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 속 모든 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중에 시간될때 다시 얘기하는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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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왠일인지 둘 다 아카데미를 놓쳤죠.레슬러때 남우주연상은누군지
기억이 가물한데,키튼의 상대는 그야말로 엘리트 배우였죠.
19:22
15.03.06.
profile image
해피독
아카데미 수상에 있어서 마이클 키튼이
미키 루크 전철 밟는 거 아닌가 했는데
역시나 그러더라고요..T_T
22:46
15.03.06.
profile image 3등

두분다 참 대단한 연기를 뿜었는데....

버드맨에서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이채롭더라구요....

23:20
15.03.06.

레슬러는 봐야지 하면서도 오래도록 미루어뒀습니다. 미키 루크의 팬이 아니라서 그런지??....

하지만 두고 두고 회자되는 작품이니... 꼭 봐야겠습니다.

03:02
15.03.07.
profile image
알았다가도 돌아서면 헷갈리는 이름. 엠마 스톤 - 엠마 톰슨
04:24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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