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쳐와 나를 찾아줘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봅시다.
아, 데이빗 핀쳐 감독의 필모그래피나 나를 찾아줘 영화 전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히 미학적인 분석 글도 아닙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정말 좋아하는 한 장면을 좀 이야기해보고 싶거든요.
사실 큐브릭 대 놀란 보다 더 핫한 대결 논쟁은 데이빗 핀쳐 대 크리스토퍼 놀란 일 겁니다. (DP 에서도 이 논쟁이 꽤 불이 붙지 않았나요? ^^;)
헐리웃 현 세대 감독 중에서 이 둘만큼 평단과 관객 모두의 존경을 받는 감독은 아마 없지 않을까요.
다른 감독들은 매니아나 대중 어느 한 쪽으로 쏠리기 마련입니다(제임스 카메론과 리들리 스콧은 한 세대 이전에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를 보냈던 사람이라 보고 있습니다)
뭐 스타일과 만드는 이야기에서도 어느 정도 비교할 만한 구석이 꽤 많죠. 두 감독 다 스릴러에서 둘째가라며 서러워 할 작품들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데이빗 핀쳐는 그 대단함이 놀란만큼 이야기되지는 않아서 항상 아쉬워요. 5차원씬만큼 직관적인 충격을 전달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놀란 감독이 딱 봐도 대단하고 엄청난 이야기를 가지고 리얼리티로 포장을 한다면, 핀쳐 감독은 리얼리티 안의 숨겨진 놀라움을 끄집어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we VS Thrill 이라고 한다면 좀 와닿으실련지 ^^;; 두 감독 다 최종적으로 excitement로 귀결되는 건 마찬가지니 뭐....
저 장면을 한번 이야기해보죠. 아쉽게도 유튜브에서는 해당 클립이 없네요. 하기사 영화에서 워낙 결정적인 도입부이니 공개적으로 돌아다니지 않을 법합니다. 아쉬운 대로 첨부한 사운드트랙을 틀어놓고 한번 곱씹어주시면 제가 느낀 게 더 와닿으실지도요.
지리멸렬한 결혼생활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은 한 남자가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햇볕이 쨍쨍한 정오, 집 주변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 일도 없고 딱히 조짐도 없습니다. 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우렁찹니다.
이웃집의 아저씨는 평화롭게 신문을 읽고 있고 이 남자가 키우는 고양이가 집 바깥에서 어슬렁거립니다.
남자는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준 이웃집 남자에게 고마움을 알리고 이웃집 아저씨는 손인사로 대답합니다.
고양이를 안고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내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인기척은 없습니다.
그리고 거실로 들어서자 산산조각나 있는 테이블을 봅니다. 그리고 다급히 아내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는 것에는 쉽게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목격하는 것에는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죠.
이와 달리 사람이 없어진 게 딱히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살인현장이나 구타 현장보다는 보는 사람이 뭘 느낄 여지가 거의 없죠.
막말로 그 존재를 알던 사람이나 부재를 눈치채지, 누구 마누라 한명이 없어진 게 70억 인구 사이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겠습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의 구성점으로 만들고 관객에게 이를 인식시킬 것인가,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낮의 시간, 모든 것은 선명하고 눈부시게 보입니다. 어둠으로 시각적 정보를 은폐할 여지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주인공 닉 던은 별일 없이 별 일 없는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의 한 패턴입니다.
그렇다고 유혈이 낭자한 바닥이나 토네이도가 휩쓴 것 처럼 어질러진 집을 보여줘야 할까요? 이건 이 이야기의 도입부로는 지나친 설정입니다.
이건 사람 한명이 실종된 이야기고, 주인공은 단지 "아내가 집에 없네? 그런데 이건 뭐지?" 하는 현장을 막 확인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강조해야 할 건 이런 거겠죠?
원래 보여야 하는 것이 안 보이는, 평소와 다른 상황에 대한 이질감, 그리고 작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법한 흔적에 대한 혼란.
동시에 지금 경험하는 이 침묵과 소란스러운 흔적이 무언가 무시무시하고 압도적인 사건의 도입부라는 긴장감과 불안함 같은 것 말입니다.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이건 엄청나게 별 거일 수도 있다는, 논리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어떤 암시를 줘야 합니다.
그리고 핀쳐는 이걸 해냅니다. 에이미!! 라는 닉의 외침에 보는 사람은 순식간에 이웃집 아저씨처럼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순간 보는 사람은 닉의 입장에서 사건의 외부로 튕겨나갑니다. 그리고 방관자가 되지요)
제가 핀쳐에게 감탄하는 건 이런 부분입니다. 핀쳐는 일상에 작은 균열을 하나 던져놓습니다. 그런데 이 균열은 보는 사람이 도저히 무시할 수 있을만하 게 아니에요. 언젠가 이 균열이 더 크게 번지고 이윽고 커다란 분열로, 종국에는 엄청난 붕괴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스멀스멀 자리를 잡게 만듭니다. 별 거 아닐 거라는 믿음은 차근차근 부정당하고, 아주 기묘하면서도 불쾌한 수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기분을 들게 만들죠.
위의 저 장면에서 이런 심리를 느끼게 하는 공의 절반은 음악감독인 트렌트 레즈너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닉이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서늘한 느낌의 음악이 깔립니다. 새벽녘의 안개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닉이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불편함과 긴장감도 그대로 서려있습니다.
고양이를 안고 들어가면 동일한 음계지만 훨씬 더 낮고 굵은 사운드가 깔리기 시작합니다. 닉은 아내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제 닉이 곧 사건의 시초가 되는 현장에 접근할 거라는 불길함, 그리고 정말 보기도 싫은 아내를 소리내어 찾아야 한다는 닉의 불쾌함이 음악에 고스란히 실리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테이블을 보고 난 후에 음산한 음이 아주 길게 깔립니다. 닉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정리되지 않는 혼란, 그리고 앞으로의 어떤 사태에 대한 닉의 긴장감입니다.
그리고 이전까지 없던 리듬감이 음악에 실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닉의 심장 고동처럼 느껴지네요. 내가 대체 뭘 본건지..? 하는 느낌이랄까요.
위플래쉬의 마지막 10분처럼, 제가 나를 찾아줘에서 몇번씩이나 다시 되돌려보는 장면입니다.
이야기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핀쳐의 완벽한 테크닉에 수십번 감동하죠.
좋은 영화에는 몇번을 봐도 볼 때마다 놀랄 수 밖에 없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핀쳐가 가진 그 리얼함과 판타스틱함이 이상하게 얽혀있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나를 찾아줘는 정말 묘하기 짝이 없는 영화입니다.
추천인 6
댓글 25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언급하신 저 장면도 돌이켜보니 대단하고요ㅋㅋ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놀란이랑 비교될건 핀처라는데 동감.놀란이 핀처를 능가했는지도 의문인데,웃겨서 정말.
너무 완벽주의라 인간미가 없지만 장르 영화 감독에 최적화된 감독같아요.
장르 영화하면 핀처가 젤 먼저 떠오르는걸 보면..
핀처도 멋지지만 작정자분 글도 되게 잘쓰시네요 잘읽었습니다~
영화 소개 프로보면서 느낀건데
집에 한부분만 어지럽혀져 있는 게 꼭 남편의 아내에 대한 무심함같기도 하더라구요
글 잘봤습니다~
개인적 선호도는
핀처 >>>>>>>>>>>>>>>>>>>>>>>>>>>>>>>>>>>>>>>>>>>>>>>>>>>>>>>>>>>>>>>>> 놀란입니다 ㅎㅎ
걍 글 속에 저 장면 생각하다가 이짤이 생각 났습니다 ^^;;
그쵸...놀란에 논쟁을 붙이려면 최소 지금 현재에 활동하고있는 다른 명감독들을 붙여야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뭐 비교하는것 자체가 무색하긴 하지만..
현 시대에 레전드라는데는 동감합니다. 제 기준에서는 놀란보다는 피티앤더슨과 데이빗 핀처가 지금 최고인 것 같습니다.
핀처 특유의 시니컬함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좋아지네요 ^^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화 끝나고 나서는 에이미라는 캐릭터에 대해 몇번이고 꼽집어보게 되더라고요. 에이미가 어떤사람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고..
둘다 대단하지만, 아직까진 핀처의 업적이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여러번 봤는데 핀처의 압승이더군요.
글구 놀란과 핀처가 아니라 핀처대 타란티노는
되어야 레벨이 맞죠...흥행은 안 믿기겠지만
핀처보다 타란티노가 높고 데뷔시기 거의 비슷합니다.
확실히 CF나 뮤비 감독 출신 인물들이 화면과 음악을 훨씬 효과적으로 사용하죠.
핀처나 리들리 스콧, 잭 스나이더([왓치맨]만 하더라도 화면구성은 정말 끝내줬으니까요) 등등...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하니 (어찌보면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화면에 신경을 쓰니까요.
핀처의 작품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볼 때마다 느끼는 건 그런 부분인 듯해요.
사소하게 보이는 부분에도 미장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니말이죠(뭐 이건 놀란도 비슷합니다만).
핀처감독님의 다음행보도 기대중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핀처의 압승입니다!ㅎㅎㅎ
핀처의 영화들은 너무나도 세밀하게 조율되어 있어서 이리저리 뜯어보기가 굉장히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비평이나 분석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가 굉장히 어렵죠.
핀처의 영화들을 보면 컷의 한두 프레임의 차이로 영화의 완성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목격할 수 있게 돼서 전율이 느껴집니다.
이 장면 부터 눈도 안깜빡해ㅛ어요
뭐 하나라도 놓칠까봐 ㅋㅋ
저도 에이미가 상을 타길 내심 바랬었는데...ㅎㅎ
놀란은 핀처와 달리 쇼트 설계엔 딱히 재주가 없죠. 하나같이 조형미가 부족한데다가 한개의 숏 다음 숏의 구도가 어떤 입체적인 공간감을 형성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몇개의 숏보다는 전체 장면들이 관객 머릿속에서 조합되며 쾌감을 안겨주는게 놀란 영화고, 숏과 신 하나하나가 예술인게 핀처영화인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핀쳐 형님을 더 좋아합니당 ㅎㅎㅎ
핀쳐와 놀란은 비교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핀쳐는 작가, 예술가, 거장이고, 놀란은 그저 그런 평범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난히 한국에서 더 각광받는 거 같기도 하고요.
놀란 영화는 그냥 웰메이드 수준. 철학도 그냥 표피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적이고 대중적으로 잘 만드는 상업적인 감독중에서 잘 나간다고 생각하네요. 놀란과 스필버그와 비교하는 게 맞는 듯. 제임스 카메론이나.
핀쳐는 작품마다 편차가 심한듯. 나를 찾아줘는 그저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파이트클럽, 소셜 네트워크, 조디악이 최고라고 생각.
뜬금없지만 (둘이 달라서 비교가 무리지만 이름과 기타등등) 핀쳐와 린치와 비교 해보는 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질문이라 괴롭지만, 고르라면 주저없이 린치로.
저는 글은 못 쓰고...그저 핀처의 팬이라 글에 공감이 간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ㅎ
말씀하신 대로 핀처 감독은 아주 미묘한 디테일에서 인물을 설명하고, 플롯을 진행시키는 능력이 감탄스럽더라구요.
이건 감독이 이야기 전체를 꿰뚫어 보고 그걸 영화적 문법으로 옮기는 데 뛰어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원작에서는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과 그들의 행동이 문자언어적으로 전해지지만
핀처 감독은 그런 감정을 단순히 인물을 세워놓은 뒤 말하게 두지 않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각적 이미지, 배우들의 연기, 음향으로 표현했으니까요.
소설과 영화는 분량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과하게 설명조가 되는 실수를 범할 수가 있는데 (아니면 아예 주요내용을 빼먹거나)
그러기는 커녕 길이가 짧은 만큼 심리를 사소한 행동들에 압축시켜 묘사했기에
어떤 면에서는 인물의 밀도가 더 높아졌다는 생각마저 들었네요.
원작 소설을 영상화시킬 경우 '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야 했다'라는 게 납득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핀처 감독은 저를 제대로 설득시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