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의 영화 [전쟁과 평화(1966)]
1960년대 그시 초호화 제작비에 소련의 국가 사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원작이자 소련의 영화 거장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연출한 [전쟁과 평화(1966)]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이 글은 영화의 스토리보단 제작과정을 더 파고들것이다.
대부분의 글은 위키에서 가져와 간략하게 번역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War_and_Peace_(film_series)
[전쟁과 평화] 원작을 살짝 알고 싶으면 여기서 보면 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2638&cid=41773&categoryId=41780
킹 비돌 감독의 [전쟁과 평화(1956)]
1959년 8월 소련에서 오드리 헵번 주연의 미국-이탈리아 합작 영화 [전쟁과 평화(1956)]가 개봉하였다. 그전에도 [전쟁과 평화]는 여러 나라에서 만들었지만 전세계에서 크게 흥한 영화가 이 영화인지라 1812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 150주년으로 다가오는 시점이라서 소련에서도 크게 성공하자 소련 문화부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이번엔 우리가 직접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1960년 유력 후보였던 이반 피리예프 감독과 미하일 롬 감독과 스탈린 상을 3번이나 수상한 세르게이 게라시모프 감독도 후보에 올랐지만 소련 문화부의 최종 선택은 [인간의 운명(1959)]를 연출했던 당시 40세의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였다. 거기에 각본도 담당하게 된다.
1961년 5월 5일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과 바실리 솔로예로프가 각본 집필을 시작하여 기존 3부작이 아닌 원작처럼 4부작(원작이 4권으로 나왔었다)으로 노선을 틀었고 1962년 2월 27일 각본을 완성했다. 이에 따라 소련 문화부에서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갔고 소련 국방부가 제작을 지원하게 된다.(당시 소련의 전쟁 영화는 대개 소련 국방부가 지원했다) 국방부에서 3명의 장군을 보내 19세기 전투 관련 고증을 알려주고 수천명의 군인을 엑스트라로 보냈다.
40여곳의 박물관에서 19세기 러시아의 소품들을 빌려왔으며 전투복을 포함한 수천벌의 의상을 제작하고 60여개의 구식 대포와 120여개의 화물 기차를 영화를 위해 제작했다.
19세기 기갑 부대를 재현하기 위해 소련 농업부에서 수백마리의 말을 보내줬고 모스크바 경찰은 말을 이끌고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당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은 우람한 체격의 피에르 베주호프 역을 생각하여 소련 역도 선수 유리 블라소프를 캐스팅하려 했으나 블라소프는 연기 경험이 없다며 결국 거절했다.
1961년 5월 배우들의 오디션을 시작하여 주요 역으로 피에르 베주호프 역에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감독,각본,주연 트리플 크라운...), 나타샤 로스토프 역에 당시 19살 신인이였던 바가노바 발레 학교를 졸업한 루드밀라 사벨리에바, 안드레이 볼콘스키 역에 바쳬슬라프 티호노프가 캐스팅 되었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역을 캐스팅하는게 살짝 애먹었는데 처음엔 올렉 스트리체노프가 캐스팅 되었지만 촬영 직전에 빠져서 그 후 뒤늦게 바쳬슬라브 티호노프로 대체되서 영화 촬영 3개월 뒤에야 합류했다고 한다.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아내 이리나 스코브세바도 피에르의 첫번째 아내 헬레나 쿠라긴으로 캐스팅 되었다. 이 중에서 바쳬슬라프 티호노프가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았으나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은 감독, 각본까지 겸한 덕분에 돈을 티호노프보다 배로 받았다.
피에르 베주호프 역의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미국판은 헨리 폰다가 연기)
나타샤 로스토바 역에 루드밀라 사벨리에바
(미국판은 오드리 헵번이 연기)
안드레이 볼콘스키 역의 바쳬슬라프 티호노프
(미국판은 멜 페러가 연기)
영화의 규모에 걸맞게 촬영도 일반적인 35mm 필름이 아닌 70mm로 결정했다. 소련에서 자체 제작한 카메라 Sovscope 70에 필름도 소련산 Svema를 사용했는데 비용 절감도 있지만 자국의 자부심도 들어간 결정이였다. 허나 촬영 감독이였던 아나톨리 페트리트스키가 소련산 필름 Svema를 극악의 퀄리티라 칭할 정도로 별로라서 이거 때문에 수천명의 엑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을 수십번이나 다시 찍는 등 영화 전체 분량의 10%를 필름 손상문제로 다시 찍어야했고 이거땜에 제작비 15%가 껑충 뛰었다고 한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침공을 시작한지 150주년뒤인 1962년 9월 7일 드디어 주요 촬영이 시작됐다. 첫 촬영으로 방화범 프랑스군을 처형하는 장면을 찍었단다.(ㅋㅋ) 소련 유명 건축물을 촬영하며 주요 대사 장면을 촬영하다가 1962년 12월 1일 주요 대규모 전투 장면 촬영이 들어갔다. 기본 수천명 단위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으며(주로 소련군) 촬영 기간은 6개월이 소모됐다. 날씨와 고질적인 필름 손상 문제로 제작비가 초과됐지만 그래도 촬영은 잘 맞췄다고 한다.
1963년 8월 25일 역사적인 보로디노 전투 장면을 촬영했는데 여기에 투입된 엑스트라만 무려 12,000명이다!, 그 후 촬영을 계속 이어가다가 편집을 거처 1965년 드디어 1,2부가 완성되었다. 1,2부 촬영에만 3년이 걸린 셈이고 1964년 촬영 도중 갑자기 건강 문제로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은 심장 마비로 죽을뻔해서 제작이 석달간 중단되기도 했다. 의식을 깨면서 하는말이 만약 내가 죽으면 세르게이 게라시모프 감독한테 마저 제작을 끝내달라고 했단다.
1965년 7월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1,2부가 처음 상영됐지만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은 참석하지 못했다. 그때 심장마비가 또 찾아와서 4분간 심장이 멈춰있었다고 한다.
3,4부는 1965년 8월 9일에 제작이 재개되고 1966년 10월 28일 주요 촬영이 종료되었으며 3부 편집은 1966년 12월 28일에 완료, 4부 편집은 1967년 8월에 완료했다고 한다. 약 5년간의 제작 여정이 막을 내린 셈이다.
영화는 총 4부작으로 개봉했으며 각편의 부제와 개봉시기, 상영시간은 다음과 같다.
[전쟁과 평화 1부 - 안드레이 볼콘스키] 1966년 3월 14일, 140분
[전쟁과 평화 2부 - 나타샤 로스토바] 1966년 7월 20일, 93분
[전쟁과 평화 3부 - 1812년 조국 전쟁] 1967년 7월 21일, 78분
[전쟁과 평화 4부 - 피에르 베주호프] 1967년 11월 4일 , 93분
자국에서 크게 흥했으며 전세계 117국에서 개봉하여 유명세를 떨쳤다. 1967년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들어갔으며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고 1969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은 [전쟁과 평화(1966)]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헐리웃에 진출하기에 이르는데 바로 그 유명한 [워털루 대전투(1970)]의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평가도 상당히 뛰어난편
평가도 상당히 좋은데 대사 하나하나 원작을 가장 잘살린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자자하다. 역시 자국 문화는 자국 사람이 제일 잘살리나 보다.
무엇보다 전투 장면은 모두가 혀를 내두르는데 한번 영상을 보자
대규모 전투 장면중 하나인 올라브룬 전투 장면을 보면 엑스트라의 대부분이 소련군이고 규모가 무러 수천명이였다... CG가 없던 시절 이렇게 대규모 인원으로 찍은 결과물은 지금 봐도 정말 무시무시하다.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장면, 대규모 엑스트라 장면은 정말 엄청나다.
보르디노 전투 장면, 엑스트라가 무려 12,000명이 투입됐다!(제작사가 웹페이지에선 못보게 막아놔서 유투브 사이트로 들어가서 보셔야한다...)
이정도면 슬슬 제작비가 궁금해질것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제작비는 830만 소련 루블(미화 약 920만 달러)이지만 이건 엄현히 소련 정부의 지원이 빠진 액수이다. 1969년 영국의 The Annual Register(1758년부터 출간하여 유명한 역사적 사건을 적어두어 매년 출간하는 책)에서 발표하길 [전쟁과 평화(1966)]의 제작비는 미화 약 1억 달러라고 밝혀 인류 역사상 역대 최대 제작비로 등극했다. 그러고 1979년 기네스북에 역대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로 기록됐다. 당시 20세기 폭스사를 말아먹게 만들 뻔했고 헐리웃 역대급 제작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초특급 대작 [클레오파트라(1963)]의 제작비가 4,400만 달러인걸 보면 [전쟁과 평화(1966)]의 제작비는 가히 엄청난 것이였다.
지금 시세로 제작비를 따지면 최소 7억 달러에 10억 달러대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액수로 영화를 찍는건 죽을떄까지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ityjkim/90000370671)
한국에선 1988년에 개봉하여 소련 영화 개봉 1호작(그 이전엔 소련 영화는 개봉 금지였다)이 되었다. 한국 개봉땐 상영시간의 절반을 잘라냈지만 그래도 3시간 반이 넘어간다. 추후 TV 문화방송에서 4부작으로 방영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잘라낸 분량이였다.
2003년 DVD 제작시 태원 스펙트럼에서 6시간 43분 완전판 DVD가 출시되었다. 3시간 분량의 부가영상도 있고 패키지 구성은 좋은 편이다.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정발판 DVD가 최선이지만 현재 절판됐고 영어가 된다면 해외판을 구입해야한다. 유투브에서도 볼수 있지만 무자막이라 보기 힘들다. 아직 블루레이가 출시되지 않았는데 언제 출시될지...
공교롭게도 역대 최대 규모의 영화가 탄생한 곳이 헐리웃이 아닌 소련이였다. 앞으로 이런 거대 제작비의 영화를 또 볼수 있을까?
P.S
현재 러시아에서 핫한 감독중 하나인 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아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러시아 영화 사상 역대 최대 제작비(3,000만 달러)가 투입된 [스탈린그라드(2013)]가 있으며 이 영화로 국제적으로 유명해저 헐리웃에도 여러 제의가 들어온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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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흥미롭네요. 어디서 시리즈로 조금씩 상영해주면 좋겠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