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아닐지라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태양의 엄니 더그람>은 80년대 리얼로봇 노선으로 유명한 타카하시 료스케의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지구인인 주인공이 속한 게릴라 조직이 데로이아라는 식민 행성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내용으로 1981년에 시작해서 75화로 완결되었으며, 80년대의 리얼로봇 계열 중에서도 타카하시 감독의 다른 작품인 <장갑기병 보톰즈>,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전투메카 자붕글>과 함께 따로 '선라이즈 리얼로봇 3부작'이라 분류도 할 만큼 진지한 드라마입니다. (주: 우리나라에선 '다그람'이 일반적이긴 한데, Gundam과 마찬가지로 Dougram이라는 영문 이름에 근거해서 전 '더그람'을 쓰고 있습니다)

<문라이트 마일>과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로 유명한 오타가키 야스오가 더그람을 가지고 2021년부터 새로이 만화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 <Get truth 태양의 엄니 더그람>입니다. 팔 쪽의 문제가 심각해진 작가가 스스로 '더이상 전같은 그림은 그릴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히며 그림체를 바꾼 것에 대해 양해도 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거에 비해 확실히 그림체는 상당히 거칠어졌을지언정 바탕이 되는 필력은 여전히 좋고 Umegrafix라는 전담 채색팀이 함께 밀도를 높이며 풀 컬러판으로 완성하고 있어요.

1권은 정계를 손에 쥐고 있는 대부호 가문의 아들 크린 카심(주인공)이 이미 데로이아에서 게릴라 독립운동에 참가한 시점입니다. 주인공 크린이 원래부터 반동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지구인 최상위 기득권층의 신분을 버리면서까지 데로이아 게릴라에 참가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구측이 자행한 대량학살입니다. 자칫 학살에 휘말려 함께 죽었을 지도 모르는 크린은 VIP인 것이 밝혀져 따로 신병이 구속된 채 구덩이에 몰아넣은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하는 학살 광경을 목도하는데, 그 규모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사진의 컷에서 저만치 보이는 로봇들의 높이가 약 10미터쯤 되는 걸 감안하면 해당 컷에서 묻고 있는 시체만 해도 족히 몇천 단위는 될 겁니다) 배경이 되는 이런 내용과 인물의 과거사를 중간중간 회상 같은 형식으로 삽입하고 있습니다.

주인공과의 교전 과정에서 불구가 된 트래비스와 아우라라는 2인조의 관점이 큰 줄기인 점에도 눈길이 가는데, 응전하지 않으면 굳이 목숨까지 빼앗진 않는 크린의 노선이나 전쟁의 본질과는 별개로 이들이 불태우는 원념의 감정 표현 또한 인상적입니다. '전쟁에서 적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자기 죄를 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같은 다른 관점에서의 질타는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잘못된 길을 이번 세대에서 끝내겠다'는 해방전쟁의 대의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원한과 증오의 루프처럼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하죠.

저는 왜 뜬금없이 오래전 로봇만화를 불현듯 떠올리고 꺼내들었을까요. 오리지널부터 본작에까지 40여년간 이 <태양의 엄니 더그람>을 상징해온 문구로 마무리합니다. 

'Not even justice, I want to get truth.' 

- EST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