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최고의 영화 10편
※ 편의상 평어체를 사용합니다.
내 영화생활을 반추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인 최고의 영화 10편을 꼽아보았다.
순서없이 영화를 꼽았지만, 그중에서도 더 마음가는 작품을 나중에 넣었다. 영화 제목과 함께 그에 대한 감상도 짧게 덧붙이겠는데, 스포일러 없이 쓰지만 조심스러우면 읽지 않아도 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목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겐 안 맞을 수 있다. 그래도 꽤 괜찮은 추천목록이 되길 바란다.
〈현기증〉 Vertigo (1958)
〈현기증〉이 걸작이란 건 분명하다. 또한 내가 〈현기증〉을 좋아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허나 나만의 영화 목록에 넣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진 모르겠다. 〈현기증〉의 밑바닥에 흐르는 편집증과 염세주의가 싫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기증〉을 나만의 목록에 넣은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가 본 영화 중 〈현기증〉만큼 생생하게 기억하는 영화가 없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라도 주요 장면만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현기증〉은 시작부터 끝까지 8~9할의 장면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강렬한 인상에 어떻게든 경의를 표하고 싶다.
둘째, 〈현기증〉은 나를 또 다른 영화적 미개척지로 이끌었다. 〈현기증〉 이전에도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다"는 진리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영화는 쇼트와 쇼트의 만남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그 쇼트의 오묘한 마법을 이용해 '카메라'라는 이름의 제3자를 드러내는 기묘함은 〈현기증〉이 처음이었다.
더 많은 영화를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목록에서 밀려날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발탄〉 (1961)
봉준호 감독은 〈하녀〉를 두고 "한국 영화계의 〈시민 케인〉"이라 말했다. 아마 '최고의 영화'라는 뜻에서 말한 걸 텐데,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하녀〉의 기괴함이 〈시민 케인〉의 장엄함과 같아지는 아이러니가 생기게 된다. 차라리 히치콕의 〈싸이코〉나 〈사냥꾼의 밤〉이 더 그럴 듯한 비교가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 영화계의 진정한 〈시민 케인〉은 무엇일까? 그 흑백의 장엄함과 견줄 만한 한국영화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오발탄〉이 그 답이라 생각한다. 시대 속에서 방황하는 인물들, 화면과 무드에서 드러나는 느와르의 향기, 천부적인 프레임 감각, 추례한 풍경 뒤에 숨겨진 희망 어린 시선,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우러나오는 정점의 아름다움. 가히 한국 영화의 〈시민 케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악의 손길〉 Touch of Evil (1958) - 1998년 복원판
'검은 영화(film noir)'의 정점, 광각과 역광의 가장 화려한 춤사위, 그러나 그 어떤 표현도 이 영화의 제목만큼 이 영화를 잘 설명할 순 없을 거다. 이 영화는 이름 그대로 천재의 손길에서 탄생한 악마적 걸작이다.
이 영화의 무서운 점은, 감독의 재능이 작품을 능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었다. 즉 〈악의 손길〉을 만든 웰즈의 재능으로 〈악의 손길〉을 아득히 넘어서는 또 다른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예감이 선명했다. 때문에 자신있게 〈악의 손길〉을 꼽는데도, 겨우 이것 밖에 꼽지 못하는 내 관람편수에 아쉬움이 깊게 남는다.
〈유랑극단〉 Ο Θίασος (1975)
나는 상영시간이 긴 영화를 싫어한다. 그냥 일상을 보내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영화 한 편 보려고 한나절을 비워야 한다. 게다가 긴 상영시간만큼 나를 만족시키는 영화가 드물다. 설령 걸작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까지 울리진 못한다. 그런데 예외 하나 있었다.
〈유랑극단〉은 4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하품 한 번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보았다. 아무런 부가설명 없이 자유자제로 시대를 오가는 앙겔로풀로스의 교차기법 또한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 하나 없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아니, 4시간이라는 상영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심히 안타까웠다. 지금도 〈유랑극단〉 속 인물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아지랑이처럼 떠오른다. 양치기 소녀 골포, 오레스티스, 흥겨운 아코디언 소리, 설원의 가무, 그리고 연극을 알리는 망치 소리... 원숙하고 세련된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라면 다른 것을 꼽겠지만, 이 목록에선 춤과 노래가 있는 〈유랑극단〉을 꼽겠다.
〈탐욕〉 Greed (1924) - 개봉판
〈탐욕〉을 둘러싼 일화는 이미 영화계의 신화가 되었다. 영화사를 다룬 책이라면 무슨 책이든 간에 그 일화를 언급한다. 덕분에 〈탐욕〉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작자가 잘라낸 300분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곤 한다. 하지만 이 안타까움은 진짜 안타까움이 아니다. 진짜 안타까움은, 300분을 잘라낸 2시간짜리 〈탐욕〉이 의외로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데에 있다. 덕분에 그 신화적인 일화도, "제작자가 내 작품의 팔다리를 잘라냈다"는 감독의 절규도, 사라진 300분마냥 현재 남아있는 분량에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야심만은 살아남았다. 제작자의 흉포한 가위질 속에서도 장면 하나하나에 박여있는 스트로하임의 야심은, 요즘 비주얼리스트들도 만들기 힘든 강렬한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햇빛이 내리쬐는 건물들, 퍼붓듯이 내리는 억센 빗줄기, 인물들의 오묘한 입모양과 표정, 그리고 흑백 속에서도 반짝이는 금화들.
거기다 행운이 따랐다. 나는 〈탐욕〉을 '소리 없이' 보았다. 흥을 돋우거나 효과음을 주는 그 어떤 음악 하나 없이, 정적 속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그것은 매우 인상 깊은 체험이었다.
〈로맨스〉 Les Amours d'Astrée et de Céladon (2007)
사람들이 에릭 로메르를 얘기할 때면 대부분 그의 초기작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나는 그것이 조금 갸우뚱하다. 내가 생각하는 로메르의 정수는 후기작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Six contes moraux)' 연작으로 대표되는 로메르의 초기작은 관객의 심리를 간지럽힌다. 주로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젊은 남성이, 매력적인 여성을 만남으로써 속으로 갈등하게 된다. 이같은 기조는 '희극과 격언(Comédies et proverbes)' 연작을 거치면서 변하게 된다. 이때부터 사랑과 의심의 바보 같은 춤사위만 묘사하던 로메르는 생(生)의 활력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섬기기 시작한다. 즉 로메르의 전반기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재해석에 가깝고, 후반기는 삶과 자연에 대한 종교적 예찬에 가깝다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나는 종교적 예찬가로서의 로메르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애정을 표하는 것이다.
〈로맨스〉는 에릭 로메르의 마지막 작품이다. 로메르 본인도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걸 알고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에릭 로메르의 〈태풍(The Tempest)〉인 셈이다. 하지만 로메르는 셰익스피어처럼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 저를 놓아주십시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사랑과 충절을, 젊음과 삶을, 그리고 대자연에 숨어있는 신을 예찬한다. 나는 그 예찬의 순간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돈〉 L'Argent (1983)
나는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미학에 익숙하지 않다.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브레송 영화를 꼽으라면 그 미학이 아직 발휘되지 않은 초기작을 꼽고 싶어진다. 〈죄악의 천사들〉 같은 거 말이다.
〈돈〉은 내가 좋아해서 꼽은 영화가 아니다. 몇몇 장면은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내가 〈돈〉을 꼽은 것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돈〉에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들 때문에라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이 영화에서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로베르 브레송은 염세주의자가 아니었다. 비극을 원하지도, 비극이 세상의 진실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참담한 운명에서 희망을 보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는 로메르와 마찬가지로 생(生)의 찬미자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감상은 쓰지 않겠다. 대신 나와 똑같은 감상을 쓴 글 하나를 귀뜸하겠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 평론가 애드리안 마틴(Adrian Martin)이 쓴 짧은 글이 하나 있다. (스포일러가 있는 글이다) 처음 읽었을 땐 '어쩜 이렇게 내 생각과 같을까'하며 놀라면서, 한편으론 나보다 앞서 그 생각을 글로 쓴 것에 시기심도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 모두 자연과 운명 아래선 형제고 동지일 뿐이다.
〈마지막 국화 이야기〉 残菊物語 (1939)
나는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를 딱 한 편만 봤다. 그리고 나는 그 한 편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다가가지 않고, 끊지 않고, 지고지순이 봉사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봄은, 위대한 감흥을 주기에 더없이 충분했다.
〈초여름〉 麦秋 (1951)
만약 반복해서 보고 싶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고르라면 〈만춘〉 같은 걸 고르겠다. 그러나 진정으로 놀라웠던 영화는 바로 〈초여름〉이었다. 지난 2월에 쓴 "존 포드 vs 히치콕 2부"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초여름〉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몇몇 장면은 어찌나 충격적인지, 그 조용한 영화관 안에서 혼자 육성으로 "어!"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도 그 경험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역마차〉 Stagecoach (1939)
그러나 이 영화가 내게 준 것을 생각하면 그 어떤 걸작도 이 목록에 오를 수 없다. 이 영화는 나의 영화이고, 나의 영화이며, 나의 영화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만큼 기대없이 본 영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땐 존 포드도 잘 몰랐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본 영화였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보는 중에도 눈물을 몇 번이나 흘렸는지 모르겠다. 그때 흘린 감격의 눈물은 지금도 내 눈과 가슴에서 생생히 흐르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나의 영화생활은 송두리째 바뀌었고, 내 삶도 바뀌었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하며, 그 사랑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Q-b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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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는 다 모르는 영화네요...
어딘가에서 만나면 꼭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보고싶네요
첫번째부터 [현기증]!!
못본 것들이 많아서 참고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