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0
  • 쓰기
  • 검색

[자객 섭은낭] 블랙 바라는 결의

靑Blue 靑Blue
1019 1 0

자객_섭은낭_스틸컷.jpg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을 본 후, 나는 ‘무술에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면, 그건 무술도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허우 샤오시엔의 말을 듣고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8년 만에 신작을 만들었다. 1980년대 후반의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미래를 짊어질 세계의 영화작가”에 언급된, <빨간 풍선>을 완성한 후의 지난 8년 동안 영화 제작 현장이 아니라 타이베이 영화제와 금마장 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일했던 감독이, 그의 필모에서 처음으로 무협영화를 만들면서 한 첫 번째 원칙은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닌, 중력을 거스르는 무술은 없다는 선언을 들으며 작년에 고인이 된 마누엘 데 올리베리아를 떠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어떤 인간도 죽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아주 슬픈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서 사물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애상한 일이고,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이기에 노스탤지어적인 서정이 있는 현상일 것이다. 한 때 <동동의 여름방학>에서 소년들이 강에서 헤엄치는 모습의 활력을 검정바탕의 필름에다 빛으로 박아 넣었던 영화작가는 이제 블랙 바를 무너지지 않는 기둥처럼 세운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와 있다. 그 블랙 바는 모종의 단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기기에 노스탤지어적인 것이다. 분명 이 영화는 코닥 35mm 필름으로 찍었지만, 후에 감독이 밝히듯 D.I를 거쳐서야 완성된 이 영화는 가변화면비를 사용하고 있다. 분명 1.37:1의 비율을 고집할 수 있었지만, 영화 초반 몇 장면에서 1.85:1의 화면비로 바뀌는 것을 고집한 것은 분명 디지털에 들어온 허우 샤오시엔의 심정일 것이다.

 

  예컨대, 코닥 35mm로 찍힌 영화는 듀프 네거티브필름(상영 프린트의 원본)이 super35에 의해 디지털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샤오시엔은 자신이 찍은 결과물을 한 번 필름으로 확인하고, 투사되는 과정을 온전히 본 유일한 관객이다. 그 특권적 위치를 스크린과 공유하지 않겠다는 것은 샤오시엔에게 단절이자 결의이다. 이 견고하고 단단한 선언에는, 결국 프로그램에 올라 변형되고 말 영화의 ‘소스영상’을 위해 35mm 필름 촬영을 고집한 놀란과 같은 허식이 없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등장했던 그 시대는 이제 끝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그의 고백은 시간을 온전히 받아드리겠다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어머니에게 결(結)은 결의라고 말을 듣고 실크로 얼굴을 가린 체 우는 섭은낭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결국 진계인을 죽이지 않고 스승을 찾아가 아이를 보고 죽이지 못했다는 섭은낭의 진술은 이제 도래할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섭은낭은 신라국으로 떠난다. 섭은낭이 암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의 검술은 완벽하나, 아직 인륜의 정을 떼지 못하였구나.”라고 말하는 스승은 분명 전에 “검은 무정한 것이니, 성인군자의 고민과 번뇌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대변이라도 하듯, 저 멀리서 진짜 안개가 그들이 서있는 산을 뒤덮는다. 그러나 그 안개는 결코 블랙 바를 뒤덮을 수 없다. 어떤 무술도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그의 말은 그런 칼날과 같은 현실 위에 서 있다. 슬픈 일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 이전의 시각이나 영상의 감수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섭은낭이 마경소년과의 약속을 지키고 함께 미지의 신라국으로 떠난다 해도, 샤오시엔은 자신이 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1

  • ps1881
    ps1881

댓글 0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범죄도시 4] 호불호 후기 모음 3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5일 전08:38 21194
HOT 코난 누적 1억 관객 1 중복걸리려나 51분 전17:43 150
HOT <범죄도시4>를 보고 2 폴아트레이드 43분 전17:51 210
HOT "AI야, 마블 슈퍼 히어로즈들을 스튜디오 지브리 버전... 2 FutureX FutureX 1시간 전17:20 464
HOT 이주빈 변천사 2 NeoSun NeoSun 1시간 전17:13 471
HOT 영화 추천 ㄱ~ㅎ [2탄] 6 도삐 도삐 1시간 전16:39 420
HOT <챌린저스> 영화관에서 봐야할 영화 노스포 2 콩가라 콩가라 2시간 전16:24 640
HOT 티모시 살랴메가 어느 영화로 빵 뜬 건가요? 16 Johnnyboy Johnnyboy 3시간 전14:56 1817
HOT 사탄의 가면 (1960) 마리오 바바의 데뷔작. 그의 최고 걸작.... 4 BillEvans 4시간 전14:26 741
HOT 리들리 스캇 '글래디에이터 2' 또 다른 시사회 단평 1 NeoSun NeoSun 3시간 전14:36 1234
HOT 캐릭터가 돋보이는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 5 마이네임 마이네임 2시간 전16:16 803
HOT '그녀가 죽었다' 후기...살벌한 풍자극 5 golgo golgo 2시간 전15:56 1560
HOT 악마와의 토크쇼 - 간단 후기 12 소설가 소설가 6시간 전11:38 2406
HOT 넷플 <시티헌터> 트리비아 11가지 8 카란 카란 8시간 전10:30 1587
HOT '데드풀 & 울버린' 뉴 프로모 아트들 5 NeoSun NeoSun 3시간 전15:06 641
HOT 프레야 앨런 '킹덤 오브더 플래닛 오브더 에입스'... 1 NeoSun NeoSun 3시간 전15:02 207
HOT 탐 크루즈 '미션 임파서블 8' 런던 세트장 샷들 5 NeoSun NeoSun 4시간 전14:05 1244
HOT [캡틴 아메리카 4] 등장 확인된 빌런 2 시작 시작 4시간 전13:49 3325
HOT 2024 칸영화제 심사위원 명단 공개 2 시작 시작 5시간 전13:34 1281
HOT '캡틴아메리카 브레이브 뉴월드' 뉴 프로모 - 샘 ... 6 NeoSun NeoSun 6시간 전12:28 1548
1134517
image
NeoSun NeoSun 28분 전18:06 158
1134516
image
NeoSun NeoSun 28분 전18:06 182
1134515
image
NeoSun NeoSun 34분 전18:00 286
1134514
image
폴아트레이드 43분 전17:51 210
1134513
normal
중복걸리려나 45분 전17:49 76
1134512
image
중복걸리려나 51분 전17:43 150
1134511
image
김치국물 54분 전17:40 396
1134510
normal
모피어스 모피어스 59분 전17:35 174
1134509
image
GI GI 1시간 전17:29 120
1134508
image
FutureX FutureX 1시간 전17:20 464
1134507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7:13 471
1134506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7:10 245
1134505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6:52 626
1134504
image
도삐 도삐 1시간 전16:39 420
1134503
normal
콩가라 콩가라 2시간 전16:24 640
1134502
image
마이네임 마이네임 2시간 전16:16 803
1134501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6:10 331
1134500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6:08 348
1134499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6:05 166
1134498
image
토루크막토 2시간 전16:04 617
1134497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6:00 781
1134496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15:56 1560
1134495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5:55 200
1134494
image
토루크막토 3시간 전15:11 268
1134493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5:06 641
1134492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5:02 207
1134491
normal
Johnnyboy Johnnyboy 3시간 전14:56 1817
1134490
normal
GreenLantern 3시간 전14:42 381
1134489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14:37 992
1134488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4:36 1234
1134487
image
BillEvans 4시간 전14:26 741
1134486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4:20 345
1134485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4:10 508
1134484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4:05 1244
1134483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4:00 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