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재자>, 2014
연출 이해준
출연 설경구(성근), 박해일(태식)
'그' 배역을 연기한 배우로서의 '진짜' 나의 아버지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후 정부가 비밀리에 준비한 무대가 성근에게 전달된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연극무대에 오를 배우로 뽑혔다는 사실도 잠시, 무참히 고문을 당하고 성근에게 중앙정보부의 조사관은 재촉하듯 묻는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빨리 말하라고. 성근은 말한다.
자신이 아들에게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못해서 정말 미안한 게 죄라고.
그후 성근에게 주어진 두 번째 역할은 북한 최고 지도부의 ‘김일성’.
국가가 제작자로 나서며 중앙정보부의 오 계장을 연출로 한 비밀리에 준비된 일인극의 무대.
드디어 성근이 집착처럼 집념으로 매달려야 할 역할이 비로소 주어진 것이다.
역할에 몰두하면 할수록, 그 배역에 점점 자신의 모습이 매몰되어 갈수록,
아들에게 아버지로서의 멋진 배우의 모습을 보여줄 날이 가까워짐을 바란다.
(아들에게 자신의 역할을 보여준다, 보여줄 것이다, 하는 것은 성근의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다.
국가의 엄정한 비밀지시로 '김일성'을 연기할 성근의 '어떤' 무대를 어린 태식이 관람하게 될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음을 성근은 정말 몰랐던 걸까?)
얼마 안 가 성근이 오른 ‘가상의 무대’는 70년대의 불안한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다.
성근의 낙담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낙담은 절박한 심정의 피폐한, 배역에 잡아먹힌 배우의 모습으로,
가족들과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20여 년동안 시대착오적인 망상증 환자로 치부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1994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북한의 최고 지도자와의 가상 토론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성근이 다시 호출된다.
그 자체로써 ‘김일성’인 성근이 해야 할 일인극의 무대가 열린 것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나름대로 추려본다면 ‘당신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여정(류혜영 분)이 태식에게 말하는, 혹은 자신에게도 던지는 물음일 수 있는 말,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이다.
바로 <나의 독재자>가 가지고 있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태식에게는 아버지가 첫 무대에 올라 대사조차 잊어버려 초라한 모습인 성근의 모습과 자신을 버린,
그리고 20여 년을 현실과 괴리된 비루한 망상증 환자로 요양원에 있는 모습만 기억에 자리한다.
어린 날 자신이 넘겨준 무적의 ‘광자력 빔’ 딱지를 받아든 아버지의 손길과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이던 환한 미소는
더 이상 기억에 담겨 있지 않다.
태식은 기억에 어느 날부터 사라진 이 과거의 사실을 '94년 어느 날' 떠올려 발견하게 된다.
성근이 자신의 모습을 지운 채 ‘김일성’으로 살았던 20여 년의 세월.
이제 그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태식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여정이 알았던, 백사장의 똘마니마저 '어떤 의미'가 담긴 듯 건넨 ‘니 아버지, 아픈거다’라는 말의 의미도 알지 못한,
외눈박이가 되어버렸던 태식이 비로소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보고 느끼게 된 것이다.
어린 날, 그리도 바라던 연극의 첫 무대에서 성근이 내뱉지 못한 <리어왕> 속의 배역인 '그림자'가 전하는 말.
바로 이것을 마지막 유언처럼 전하는 성근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신의 무대는 태식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성근의 진심어린 아버지의 멋진 ‘광자력 빔’인 것이다.
하지만 이 진의를 알기 이전에 보게 될 장면,
성근은 자신의 동지를 규합하자며 허 교수(이병준 분)를 찾는다.
허 교수가 배우를 잡아먹는 배역이 있다며 성근이 그 배역에 매몰된 정황을 말할 때,
우리는 안타까운 성근의 모습을 지켜보며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관객)들이 지켜보는 성근의 모습에 대한 물음,
그래서, 하지만 정말 성근이 배역에 몰입되다 못해 집착과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한 망상에 시달리는 불행한 연극배우였을까?
영화의 서사가 흐르면 흐를수록 성근이 보여주는,
태식만 알아채지 못하는 미묘한 징후는 이제 그가 원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들 태식에게 보이고 싶은 멋진 아버지의 모습, 하지만 준비되지 못하고 언제 열릴지 모를 장막 뒤에 자리한 연극배우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성근은 배역에 매몰되어 가면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불행하고 실패한 연극배우가 아니다.
오히려 그 주어진 배역을 통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아들 태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버지로서의 아버지,
그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초반, 태식은 자기 아버지가 주연배우로 연극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애써 우쭐대며 말한다는 것을 열변한다.
자신의 친구들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놀려대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믿고자 하는 태식.
이 장면에서 이미 성근이 아들 태식에게만은 멋진 연극배우의 모습,
앞으로 벌어질 '비극'이라는 모노드라마에 던져진 연극배우 김성근의 일인극을 준비하고자 하는 확고한 계기가 되었음을
자명한 추측으로 미루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타니~^^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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