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접(x) 허접(o)
전 영화 제목에 다소의 집착같은 게 있어요. 영화 제목이 영화 내용을 완벽하게 함유하거나 대표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용과 동떨어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죠.
그런면에서, [귀접]은 제목에 불성실한 영화였습니다.
'귀접'이라는 게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은 아닙니다. (한국) 영화에서도 자주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재죠. 그렇다면 남들이 아직 해보지 않은 영역='좋은 건수'라는 말이잖아요. 그렇지만 영화 [귀접]은 이 좋은 건수를 잘 활용해 보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귀접]은 스토커에게 시달리는 불쌍한 여인네에 대한 영화입니다. 스토커가 하나만 붙어도 기가찰 일인데 스토커 둘이 붙어있어요. 하나는 인간 스토커이고 하나는 귀신 스토커ㅂ니다.
그렇다면 제목이 [귀접]인 영화에서 당연히 귀신 스토커가 이야기 중심이 되어야할 거 아니냐구요.
그렇지만 영화 상영시간의 거의 대부분은 인간 스토커에게 배당되어 있습니다. 귀신은 왜 나왔나 싶을 정도로, 분량도 얼마 안되는 데다 존재감도 없고, 설명도 없습니다. 한국 귀신 영화의 특징이 귀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읊어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 나오는 귀신은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정도로 귀신을 무시하는 한국 귀신 영화는 참으로 보기 드물 겁니다.
그렇다고 인간 스토커 쪽은 좀 나은가 하면...
실제 세상에서 인간 스토커는 귀신 이상으로 공포스러운 존재죠. 그렇지만 여기 나오는 스토커는 그냥 짜증나는 넘입니다. 귀신은 존재감 없고 인간은 그냥 짜증만 날 뿐이라 이 두 스토커 중 어느쪽도 보고있는 사람에게서 '공포'라는 감정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두명의 스토커가 한 여인을 노리고 있으니 둘은 적대하는 사이가 될 수 밖에 없겠죠. '적의 적은 친구'라고, 전 그래도 이 짜증나는 넘이 나중에 가면 귀신을 퇴치하는데 어느정도 역할을 해 주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냥 진상만 부리다 퇴장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귀신은... 세상에 이렇게 어이없이 간단하게 한방에 귀신을 처리하는 영화가 또 있나 싶어요. 영화 내내 존재감이 없던 귀신은 퇴치될 때에도 참 존재감 없이 사라집니다. 의외라면 의외고 그런면에서 희소하다면 희소한 영화일지 모르지만, 좋은 쪽으로 희소한 게 아니잖아요.
스토리도 별 거 없고 기복도 대단한 고비도 없이 그저 밋밋한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의 최후의 보루인 깜짝쇼나 귀신쇼나 유혈쇼라도 잔뜩 보여주나 하면...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냥 밋밋해요. '호러영화'를 찾아서 보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요소란 걸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극장용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맞는지도 의심스럽고 원래부터 귀신영화가 맞았는지도 다소 의심스러워요. 지난 몇년간 케이블 용으로 나왔던 호러물들 보다 퀄리티가 떨어져 보이고...
이쯤에서 문득 드는 생각이... 혹시 기획단계에서는 에로영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그러고 보면 귀접이라는 소재부터가 그렇고, 은근히 베드신 횟수는 많은데다...... 이 허름한 각본과 밋밋한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는 장르는 에로밖에 없다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영화 속 모든 귀접장면(=베드신) 들은 에로와는 거리가 멀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배우 노출이 있기는 하지만 본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부분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그런 면에서는 진짜 에로물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앞서 불평했던 허탈한 귀신퇴치 장면은 만약 이 영화가 진짜로 에로물이었다면 나름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클라이맥스이고 에로사항이 꽃피어야할 부분에서 허탈함만 느꼈다니까요...
뭐랄까... 나레이션 빠진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뭐... 애초에 존재도 모르고 있다 별 기대도 안하고 본 영화라서 저 나름대로는 그럭저럭 킬링 타임용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sattva
추천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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