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마음 어린 공감보다 교과서적인 끄덕임
윤제균 감독의 신작 <국제시장>을 시사회로 보았습니다.
진정성은 엿보이나 그것이 세련되고 능숙하게 표현되지는 못한 영화입니다.
일부 매체나 평론가들에게서 제기되는 이 영화의 정치적 측면은 해석이 과장된 듯도 하고,
그런 의도보다는 고생만 하신 부모 세대들을 위로하려는 자식 세대의 마음이 순수하게 밴 듯한 느낌의 영화입니다.
(특히 온 가족이 모여 있을 때 덕수(황정민)이 방에 들어가 독백하는 결말부 장면에서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흥남철수부터 이산가족 찾기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두루 섭렵하며
부모 세대의 위대함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있고요.
그러나 그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대단히 전형적이고 올드해서 마음으로 우러난 공감을 하기보다는
옳은 내용이 들어간 교과서를 읽었을 때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무엇보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를 표방한 이 영화에서 흥남철수, 파독 광부, 베트남전 등
역사적 사례들은 많이 보이나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은 희미하다는 점은,
부모에 대한 감사함과 그 위대함을 표시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 세대를
누구와도 다른 생각을 지닌 한 개인보다 '부모'라는 역할에 또 한번 가두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영화는 부모께서 희생만 하셨다며 위로를 건네지만, 끝내 그런 부모를 '한 인간'의 위치로 끌어올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덕수는 '희생만 하는 아버지'라는 캐릭터에 충실하면서 역사 속 사건을 실어나르는 매개가 될 뿐,
그 속에서 돋보이게 빛나지는 않는 듯 합니다.
영화는 한국의 현대사를 훑고픈 의지가 무척 강한데, 다큐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영화이니
그 전달 매체로 덕수라는 인물을 집어넣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는 '스토리'나 '사건'이 아닌 '사례' 중심이 되었습니다.
인물이 사건들 속에서 큰 변화를 겪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물이 사건에 변화를 주는 것도 아닌,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그저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일련의 스토리 속에서 켜켜이 감정이 쌓일 때 마지막에 가서 그것이 효과적으로 터지는 법인데,
이 영화는 '아버지는 위대하셨지. 예를 들면...'이라는 화법으로 반복적으로 사건을 제시하다 보니
감동을 유발하는 방식도 치밀하기보다 즉흥적인 듯 하고, 그나마의 감동들도
영화가 개발했다기 보다는 역사 속 사건에서 으레 떠올릴 듯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에 가깝습니다.
감동을 유발하는 장면들이 대부분 적당할 때 끊지 못하고 한 템포 더 나아가 느슨해진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다만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배우 등 연기력이 충만한 배우들이 두루 포진해 자칫 교과서적이고
딱딱해 보이는 역할과 대사마저도 호소력 있게 소화하고,
말로만 듣거나 교과서에서 몇 줄의 글로만 만났던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꽤 구체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역사적 순간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서의 스케일과 세심함도 돋보였고,
덕수의 인생역정을 순차적인 구성이 아닌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현재 시점의 상황들 속에서
플래시백으로 던져 제시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어렸을 적 자주 갔던 국제시장, 대영극장 등의 공간이 나와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전작인 <해운대>가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 어머니와 예전에 <카트>도 보고 이번에 <국제시장>도 함께 봤는데,
눈물은 <카트> 때 더 많이 나더라고 하셨습니다.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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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가 더 좋았어요 전.
와 좋은 리뷰네요. 보지 않았어도 영화가 어떤 느낌일지 다 알 것 같습니다.
뭐 윤제균 감독에게서 작품성을 기대하진 않아서 국제시장도 그럭저럭 재밌겐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