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디 팬심)스파이더맨? 우리가 만들자!!!
네. 제목에서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여러분과 반대되는 일을 해봤습니다. 다들 굿즈 열심히, 진짜 열심히 모으려 다니셨죠? 저는 그 반대의 썰을 풀려고 합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스파이디를 어떻게 접했느냐...
참으로 오래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합니다.
1979년이죠. 걸출한 영웅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슈퍼맨이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같은 전 근대적인 상투 문구가 먹힐 시절입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저의 인생은, 그야말로 달라졌습니다. "꿈과 희망!"을 어렴풋이나마 생각해보게 되었기도 했지요. 그런데 비슷한 시기이거나 조금 늦은(정확하게 기억이...), 연탄과 락스로 그룹을 이룬 친구의 집에 갔더니 이상한 드라마가 TV에서 합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50미터 정도를 걸어가야 되고, 컬러TV를 여기서 저는 처음 보았으니까요. 뭐 대단했던 집이라고 해두죠. 나중에야 알았지만 시험지, 답을 보여주거나 이름을 바꿔써넣어 달라고. 여튼... TV에서.
희한한 녀석이 나오는 겁니다.(영어는 모르니 화면만...)
건물을 기어올라요.
손목에서 밧줄이 나와요. 분명히 제 기억에는 거미줄이 아니라 밧줄이었습니다.
밧줄은 기다란 하나이기도 한가 하면, 마치 거미줄을 본 뜬 그물 모양으로도 나갑니다.
복면을 벗으면 기자로 활동합니다.
와! 놀랍더군요.
제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화요일인가 목요일인가 오후 4시쯤에 가면 이 친구네 집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팽,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네 집으로 갑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는 그 친구네 집에 가지 말라고 호되게 야단을 칩니다. 몽둥이로 맞기도 했고요. 자연스레 이 친구와는 멀어졌습니다. 실로 까맣게 잊었던 기억에 불을 당긴 사건이 발생합니다.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기억이 하나 둘 소환되더군요.
무려 20년이 넘어서야.
친구(였던) 그룹은 부도로 사라졌고, 저는 IMF에 직격탄을 맞았던 시기였습니다. 어렵던 때였습니다. 정말. 아마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을 보며, 저 아마, 팝콘 박스에 얼굴을 처박고 울었던 것 같아요. 기억과 현실, 미래가 엉켜 자꾸 저를 건드리더군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고만 해두죠.
몇 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때입니다. 아마 익무에서 저에게 나눔 받은 분들은 어렴풋이 짐작하시겠지만, 그 분야 일을 병행할 때입니다. 설명하기 복잡한데, 음, 라인 사장? 이러면 젤루 이해하기 편하겠네요.
마나님께서 묻습니다.
"이런 게 들어왔는데, 단가가 안 맞아."
아이들 스티커를 만들어달라는 의뢰입니다.
"안 맞으면 안 하면....."
디자인을 보는 순간! 눈이 띠용, 마음이 벌름거립니다. 내용인즉 스파이더맨 스티커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였습니다.
"만들면 되잖아!"
"그게 힘들어."
"왜?"
"우리가 만들자!"
"안 돼에!"
"우리가 만들자, 응?"
결정은 내렸지만. 하, 쉽지 않았습니다.
단가가 맞는 공장을 찾아내는 것도 힘들 뿐더러 아이들용 스티커라 독성이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나중에 보니 아이들은 이걸 얼굴에 붙이고 잘 놀더라고요. 즉 초저가이면서 유럽의 모든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고 아이들이 본드를 입에 가져다대어도 독성이 없는 스티커를 만들어야 했던 겁니다. 안타깝게도 A4용지에 스파이디의 여러 모션이 붙은 스티커를 하나 팔아도 1원이 안 남습니다.
불가능!
그러나 불가능이란, 나폴레옹이 사후로 사전에나 있는 단어겠지요.
바이어를 통해 스티커를 기존에 만들었던 회사와 접촉합니다. 본드는 어디서. 디자인은 어떻게. 단가를 낮추는 방법은. 여러 경로로 다양하게 설득을 해보고 정보를 얻었습니다.
결단만 남았습니다.
미래를 보고, 회장을 설득해 중국에 공장을 짓기로 합니다.
중국 공장, 거창하게 들리겠지만...네...소창하게 상상하시면 됩니다. 깔끔한 집에 기숙사 정도로.
공장 설비를 만들고 기타 등등.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1차 샘플.
희망에 둥둥. 보냈지요. 실패!
스파이디의 미간이 넓다.
2차 샘플.
실패.
스파이디의 눈꼬리 각도가 다르다.
등등등.
이 디자인 태클을 건 데가 마블이더군요. 진짜 까다로웠지만 너드인 저에게 오히려 기분이 좋았던 일입니다.
3차. 4차.
그렇게 스티커가 거의 1년이 넘어 만들어졌습니다.
제품은 유럽을 비롯해 아시아아프리카를 제외한 거의 전 지역에 팔려 나간 것으로 압니다. 거의 20년이 다 되었다 보니 이제 이 스티커는 샘플조차 없습니다. 아마 제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을 텐데 3년 전에 제 작업실에 놀러왔던 친구의 애기들이 싹, 챙겨 가버렸습니다.
이후, 저는 이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물론 마나님께서는 아직도. 그런 연유로 익무님들께 제가 상당한 관련 물품을 나눔합니다. 받으신 분들 꽤 되실 겁니다.)
제품도 스티커 하나에서, 펜던트, 반지, 팔찌 등 여러 가지를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샘플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나며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 나누어주었거든요. 보육원에도 주고, 교회 애들에게도 주고. 단 너드인 제 마음에 두고 싶은 녀석 몇 개만 딱!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레어템이라며 제가 익무 분 한 분에게 주기도 했었지만요.
그게 바로 이 녀석입니다.(십여 종 됐는데 딱 두 개...ㅠㅠ)
마지막 남은 두 녀석입니다. 물론 저 혼자 했던 일도 아니고 여러 사람의 결정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여전히 스파이디 스티커를 다 줘버린 건 아쉽습니다. 하나만 남겨둘 걸. ㅠㅠ
저한테는 아 내가 이런 일도 했었지, 하는 기억과 더불어 가보로 남겨두기로 결정했습니다. 뭐 아직도 남은 물량이 어디인가에서 팔리고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사실 오늘도 무언가 나누어줄 것을 고민합니다.
매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또 한국 내 어려운 이웃들에게. 그리고 익무 분들에게도요.
스파이디 스티커 역시 수천 장을 나눠주었습니다. 물론 이 물품을 의뢰했던 분들이 알면..... 다 지난 일이니 봐주시겠죠.
어느 분들께는 매우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 행복하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지나와 보니 어려웠던 기억도, 또 이렇게 기억을 글로 써보는 지금도 행복합니다. 물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절대!!!!!!
어린 시절, 막연히 보고 환호했던 스파이더맨이 영화로 또 굿즈 등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저는 꿈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들로 탄생하는 너드들 역시, 다른 거 말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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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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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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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하나...나눔해버릴까요? ㅎ
땅속에 500년쯤 묻어두면 고가의 골동품이 될테니 그때가서 파시면....
오 장인정신~ 진정한 팬이십니다.^^ 스파이디는 사랑입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는 그 시리즈 MBC에서 방송하는 걸로 봤습니다. 지금은 거의 기억나는 게 없지만요ㅎㅎ
관계자셨군요. 존경스럽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골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