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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 - 간단 후기(약 스포)

소설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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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다해 살아온 삶인데, 삶은 일순 우리를 배반할 때가 있습니다. <정순>은 그런 삶의 배반에 직면한 한 여인의 가녀린 몸짓이 담긴 영화였습니다. 

 

스크린샷 2024-04-17 122103.png.jpg

 

 

영화를 보기 전까지. 으레 그러하듯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보지 않고 갔습니다. 물론 의도치 않게 워낙에 화제가 커서 알게 되는 영화도 상당수입니다만, 또 그건 그대로 즐기려고 합니다. 어쨌든 그럼 마음으로, 별다른 기대보다는, 영화를 즐긴다는 마음으로 갔더랍니다. 조금 심심하구나, 하며 약간 졸림을 참으며 하품을 몇 번 참던 어느 순간부터 특정 사물 하나를 통해 불안함이 내비치더이다. 그러더니 영화는 어느새 파문을 넘은 너울이 되어 객석에 다다르더군요. 

 

너울!

바다의 크고 사나운 파도, 정도로 표현되지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자주 파도가 뒤집어졌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너울에 그대로 노출되었다가는 십중팔구 아래로 휘말리며 사망에 이릅니다. 아마도 해수욕장에 가면, 너울성 파도에 대한 경고를 많이들 들으셨을 겁니다. 네, 그 너울!!!

<정순>은 마치 너울처럼, 연안에서는 파도가 죽어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태풍처럼 몸을 휘감아 그 속으로 빠뜨리는 영화였습니다. 

 

아마도 오십이 넘은 나이. 곧 딸이 결혼을 하는 엄마, 정순은 홀로 살아갑니다. 공장에서 어린 상사와 여공들에게 멸시에 찬 눈길을 받지만 나이는 그냥 딴 계급장이 아니라는 듯 웃으며 넘길 줄도 아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네 엄마이자 여자이고, 아줌마입니다. 

다만 삶은 부박하기 그지없어서, 더러 결과를 모르고 했던 행동이 내게로 너울처럼 되돌아와 죽일 듯이 달려들 때가 있습니다. 무미하고 건조하며, 그러하기에 더는 바랄 것도 없던 인생에서 비슷한 처지를 알아보고 몸을 맞대 본 한 남자가 정순에게 그러했습니다. 

정순은 무시와 조롱을 무시로 버텨내고 참아냈지만 비슷하다고 몸을 대어 본 남자는 성마르고 경솔했던 겁니다. 

 

이후 영화가 주는 삶의 노애, 그 노애가 촉발한 고통과 고스란히 전해지는 정순의 단절은!!!

비겁하지만 또 이렇게 말하게 되네요. 영화를 통해 확인하십시오, 라고. 

 

영화 <정순>은 한 여인이, 고통으로 가득한 절벽에 내몰리는 과정을 직관적이고 쉽게 보여줍니다. 그러하기에 그 절벽에 내몰린 순간을 너무나도 간단히 관객마저 공감하고 맙니다. 그 공감은 앞서 너울이라고 표현했던 감정이 되어 객석 주변을 관객처럼 앉아 나와 함께 합니다. 쉬웠기에 공감했던 영화가, 그래서 주는 절망적인 고통은, 가히 아픕니다. 마치 칠순을 넘은 <칠곡 할매>들이 시를 읽는 것처럼 간단한데도 날이 서린 단도처럼 쿡쿡 심장을 찔러댑니다. 

 

혼자 고통을 삭이던 정순에게 오히려 딸은, 상황을 타개하자며 분노하고 행동하고 결단합니다. 그러나 정순은 그럽니다. 아파도 내가 아프고 결정해도 내가 한다고. 이 말은 가슴에 꽂혔던 칼을 빼내려는데, 다시 한 번 관객 가슴 깊숙한 곳에 칼날을 새겨넣는 고통을 아로 새깁니다. 

 

나. 그래 남도 아닌 나. 

 

나를 잊고 남을 위해 살던 우리네에게, 왜 나부터 챙기지 않았는가에 대한 쉽고 빠른 경종이 고통 속에서 잉태해 지진을 일으켰다고 할까요. 이후 정순은 자신이 이 고통을 끝내고 해결할 거라는 듯 여러 행동을 합니다. 결심하고 행동한,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가해자들에게 마치 미친 사람처럼 출근했던 공장에서, 관객은 정순이 되어, 또는 정순의 딸이 되어, 조마조마하며 상황을 갈마볼 수밖에 없습니다. 

 

칼이라도 들고 가해자들의 가슴에 들이댈 줄 알았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순이 눈물을 꾹 참으며 부라리다 한 말은 "니미 씨발!"이 전부였습니다. 니미 씨발! 그 한마디를 하려고 죽음의 고통을 건너, 가해자들 앞에 서다니. 허, 그 순간 마음 속에서 새던 바람 하나는, 미세한 먼지조차 날리지 못하는 바람이 되어 겨우 입 바깥으로 빠져 나가더군요. 

 

나도 모르는 사이, 너울처럼 다가온 고통을 승화시키는 정순의 모습에서, 살다가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미칩니다. 우리는 사람이라서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는 동안은 또 사람과 부대껴야 합니다. 역설입니다. 억지로라도 니미 씨발, 따위를 내뱉는 것으로는 해갈할 수 없을 고통을 참아낸 정순의 모습에, 그저 한없이 또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중년의 삶에 대해 반추해 보게 되더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나이들어 가는 것, 그게 삶이겠지요. 

 

추천합니다. 분노 한모금을 짐처럼 안고 극장을 나오겠지만, 그래서 가치 있는 영화였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극장을 나온 뒤로도 무서운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상식과 기준'에 대한 확고한 가치와 개인 철학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자답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잘 연출한 덕분이겠지만, 정순이 운전하던 차를 타고 극장을 나온 듯한 기분은, 쉬이 가시지 않은 기분을 대신하던 거겠지요. 그 결말과 봉합은! 네, 할 말을 묻게 만드는 숙연함을 정순이 선물로 줍니다. 

 

무거운 주제를 쉽고 직관적으로 풀어내 누구나 공분하게 만든 정지혜 감독, 잘했습니다. 

매력 없던 아줌마가 어느 순간 반짝이던 배우로 각인하던 순간을 주었던 김금순 배우님, 멋졌습니다. 

 

영화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보다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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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3

  • 吉君
    吉君
  • golgo
    golgo

  • 이상건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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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로 추천 작품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3:29
24.04.17.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이상건
감사합니다. 영화가 직관적이고 쉽습니다. 그래서 성큼 다가옵니다.
기회 되시면 분노하시겠지만, 관람하시기를 고대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13:56
24.04.17.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golgo
그러네요, 쉽고 단순하게 정서와 플롯을 쌓으면서도 치열했네요.

오늘도 좋은 날 되십시오.
14:24
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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